놀이기구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던 책!!!

시리즈 블루픽션 69 | 이진
연령 13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2년 11월 9일 | 정가 10,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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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회전목마나 타는 내게 청룡열차와 바이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중학교 때 겁없이 바이킹으로 불리는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를 탔다가 숨이 그대로 멎는 줄 알았다.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몸은 공중으로 떠 오르고 배 속에 있는 장기들은 모조리 몸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던 그때의 느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놀이 동산에 가곤 하지만 쳐다보는 것 조차도 싫어하던 내가 불현듯 ‘원더랜드’ 속으로 들어가 나오기가 싫었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벌집 87호에 사는 중딩 ‘승협이’는 원더랜드에 가고 싶어 몸이 단다. 하지만 공장에서 한달 동안 받는 엄마, 아빠의 월급이 18만원이던 시절에 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힘든 일이다. 광고 포스터 속 마법의 성은 꿈과 환상의 나라 원더랜드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들을 유혹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원더랜드에 갈 수 있을까?

갤러그와 버블버블, 짤짤이와 80원짜리 우표… ‘승협이’와 같은 시간을 살았던 나는 예전의 기억 탓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말할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눈치를 보며 주인집을 기웃거리고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지고 공중 변소 앞에서 줄을 서던 그 때. 옷차림만으로도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확연히 구분되던 세상은 부와 성공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세대를 양상하고 말았다. 마음의 풍요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쫓아 허덕이는 모습으로…

‘승협이’는 잡지 응모권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원더랜드에 입성한다. 원없이 놀이기구를 타며 놀줄 알았지만 웬걸? 노란 양복의 사나이는 전국에서 뽑힌 서른 다섯 명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엄청난 이벤트를 제안한다. 이른바 ‘그레이트 파이브’로 불리는 놀이기구 위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 최종 우승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는데…정말 우승 상금으로 200만원을 주는 걸까?

하늘을 날으는 해적선, 안드로메다 회전 원반, 고공 자유 낙하, 블루드래곤 특급, 보물섬 대탐험, 말만 들어도 아찔한 놀이 기구를 타며 오로지 1등을 위해 비명을 삼키는 아이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동생의 코피를 쏟게 하면서까지 힘들게 왔건만 애시당초 신 나게 놀다가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오직 이겨야겠다는 마음 뿐이다. 35번을 단 흑인 혼혈 소녀 ‘영자’와 생김새만큼 재수없는 1번 ‘백돼지’, 1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13번 ‘사기꾼’의 사투가 그저 웃음으로 넘길 수 없는 건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우리네 모습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이 나은 비극 아래에서 태어난 수많은 혼혈 아이들과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먹으며 부자가 된 졸부들, 대머리 대통령의 총질에 편승해 권력을 쥔 군인들과 노조를 만들어 투쟁한다는 이유로 쫓겨다니는 노동자들, 아이들은 어른들의 역할을 하나씩 떠맡으며 제 몫을 충실히 해나간다. ‘승협이’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블루픽션 시리즈>는 아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다. <원더랜드 대모험>은 여섯번째 블루픽션상을 거머쥔 책으로 심사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굉장히 멋진 작품이었다. 직접 놀이기구를 타는 듯 스릴과 어지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승협이’와 원없이 원더랜드 곳곳을 쏘다녔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돼버린 ‘승협이’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두손을 꼭잡고 끝까지 따라 붙었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누구나 동경하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세계는 때로는 현실보다 더 잔인하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 속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씁쓸해진다.

 

원더랜드에서 걸어나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