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찰에 대한 물음, 그 시작>
판타지 소설에 대한 물림이 있는 나로써는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요즘이다. 반면 판타지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중딩 딸은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타>에 매달려 끝장을 볼때까지 미동도 않는 판타지 광이다. 사실 딸때문에 판타지에 입문한 나로써는 이 광팬의 열정을 따라갈 도리가 없는 듯도 하다.
미래를 상상하는 인간들에게는 희망보다는 암울함이 늘 앞서는 듯하다. 배트맨에 나오는 고든시의 사람들이 그랬고 살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좀비세상을 담은 영화가 즐비하고 영혼불멸을 꿈꾸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클론이 등장하는 아일랜드 역시 그러했다. 왜? 늘 미래를 그린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희망보다는 절망, 그 가운데 한가닥 피어나는 희망을 찾는 인간에 국한되게 그려지는지 아쉬웠다. 그만큼 지금의 인간이 내다보는 미래는 암울함이 지배적인 듯하다.
실은 나 역시 이 소설이 클론이 나오는 미래사회를 다룬다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앞부분은 영화 아일랜드를 다시 리믹스해서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클론이 탄생하는 장면. 이들이 받는 주입식 이론교육, 그 과정에서 폐기처분당하는 동료 클론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 바다로 둘러싸인 낙원을 연상케하는 드메인..
살짝 서운한 감이 들 무렵 하나의 맥처럼 계속 나를 이끈 것은 베타1권 만들어진 낙원의 주인공인 엘리지아가 10대 소녀라는 점이었다. 가치관이 성립되기 전,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기의 인물이 주인공이라니…성인들이 담지 못하는 과감한 도전과 반항, 놀라운 만한 변화와 성장이 그려질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베타, 아직 개발중이고 시험판인 클론을 지칭한다. 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클론은 제각각의 역할을 가지고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엘리지아는 드메인의 총독 집으로 팔려가 그집 인간 아이들과 놀아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죽은 인간의 복제품인 클론은 인간의 감정도 없고 미각도 없고 자신이 있게 한 시조에 대한 기억이 없어야 하는데 엘리지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살아난다. 물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시조가 사랑한 사람에 대한 환영이 떠오르고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고 이성을 만나 가슴뛰는 설레임도 갖게 되니 말이다.
사람들의 야욕과 탐욕을 조금씩 알아가고 그 부당함을 느끼게 되는 엘리지아의 변화는 이 책의 가장 주된 핵심이다. 독자가 엘리지아의 시각과 동일시 되면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이당하는 부당함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 영혼이 없다고 하나 참혹하게 버려지고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럼 우리는 미래에 복제인간에 대해서 냉담해지는 이 인간들과는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도 복제 양을 만들고 우리는 과학적 쾌거라면서 인간의 수명인 연장되겠군 하는 연상을 의도없이 순식간에 하게 된다. 그 복제 양이, 원래 양을 위해 희생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의식중에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섬뜩 놀라게 된다. 문제 의식없이 군중심리에 이끌려가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이 책속에 등장하는 클론을 지배하는 인간들이다.
판타지의 끝없는 상상,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하면서 문득문득 미래의 우리의 삶과 현재의 모습을 연결지어보게도 된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단순히 재미를 주는 것에서 끝날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동안 작가는 엘리지아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시조인 즈하라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예측하지 못할 궁금증을 남긴다. 엘리지아가 인간성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면 2권에서는 즈하라가 인간의 성숙에 대해서 3권에서는 클론이 되고자 했던 총독의 첫째 딸의 이야기, 4권에서는 클론임에도 엘리지아가 뱃속에 갖게 된 또 하나의 생명, 엘리지아의 딸 잰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모두 인간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가 되리라는데 동감하면서 새로운 기대감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