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절묘하게 재배합하여 양치기 소년을 다시 만나다

시리즈 비룡소 창작 그림책 48 | 글, 그림 김세진
연령 5~10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4년 5월 15일 | 정가 13,000원
수상/추천 황금도깨비상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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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을 부탁해

 

 
상상해보았습니다. <양들을 부탁해>로 비룡소 황금도깨비상(2013년, 그림책 부분)을 받은 김세진 작가는 어린 시절  <늑대와 양치기 소년>을 읽으며 혹시 억울해했던 것은 아닐까하고요. 비록 경직된 윤리관의 어른 입장에서야 “늑대다!”란 거짓말로 어른들을 오가게하는 소년이 괘씸하지만, 장난꾸러기의 눈높이에서는 얼마나 재미있었겠나도 싶습니다. 장난 좀 쳤다고 몹쓸 녀석으로 집단적 이지매를 당하는 소년이 가여워 보일만도 합니다.
<양들을 부탁해>를 읽은 9세 소년도 아이 입장에서의 억울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거짓말 한 것도 아닌데, 어른들이 안 믿어주네. 늑대가 진짜 있는데……….. 어른들은 원래 애들 말 잘 안 듣는 편이긴 하잖아요.”하며 작품해설을 해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억울했겠다. 어른들은 아이들 말, 교정하고 훈계하긴 잘하면서 막상 경청해주진 않기도 하니까…….’하면서도 아이의 지적에 뜨끔했답니다.
<양들을 부탁해>를 읽어주기도 전부터 6세 아이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 한권의 그림책 속에 아이가 익히 알아온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음을. 김세진 작가가 붉은 털이 숭숭한 늑대 한 마리를 두꺼운 실 삼아 두 이야기를 엮어 놓았음을. 한글을 아직 완벽하게 모르는지라 상상의 나래를 해독기 삼아 6세 아이가 동생에게 책 설명해주는 것을 듣자니,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어떻게 늘 들어온 두 가지 이야기를 한 실로 엮을 생각을 한 번도 못해보았을까? 김세진 작가는 상상했나봐요. “빨간 모자”의 음흉한 늑대나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사실은 동일 늑대일지도 모른다고……
소년의 아버지는 하나둘씩 사라지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늑대사냥에 나섭니다. 소년에게 양떼를 부탁하지요. 왠지 자신에게 주어진 양 수호자 임무가 자랑스러워진 소년은 어른흉내가 내고 싶었는지 금기를 깨고 숲 속으로 양떼를 몰고 갑니다. 숲 속에서 새끼양이 바르르 떨며 메에메에 울더니만 양 떼들은 겁에 질려 이내 흩어져버립니다. 양들만큼이나 겁을 잔뜩 먹은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불렀지만, 어른들은 소년을 거짓말쟁이로 몰며 화를 냅니다. 잠 못 이루는 소년에게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고, 소년은 결심합니다. 소중한 양들은 자신의 손으로 지키기로.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소년, 사냥총을 집어 들고 연습하기 시작합니다.
막상 숲 속에 들어서자 다시 공포에 질리는 소년, 하지만 양들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그러모으고 사냥총을 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이제 늑대와의 대면, 소년은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소년이 구해낸 것은 양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천진한 빨간 모자 소녀도 구했고, 마을 사람들도 늑대라는 잠재적이며 실재하는 위협으로 부터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해줍니다. 엄밀히는 안도의 춤이겠지요. 소년을 거짓말쟁이라 폄하했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소년이 이룬 용감한 쾌거를 함께축하해줍니다. 이제 소년은 ‘꼬마 늑대 사냥꾼’이라고 불리지요.
<양들을 부탁해>를 읽다보면 어린이의 힘을 긍정해주는 작가의 긍정마인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쟁이나 장난꾸러기,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존재처럼 그려지던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소년은, 어른들조차 쉽게 해낼 수 없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냅니다. 양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든든한 버팀목 삼아서……..소년 역시 여느 아이들처럼 늑대를 두려워했지만 결국 그 두려움의 대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나가며 성장하네요.
고전의 패러디나 고전 다시쓰기야 이미 많은 작가가 시도 해왔지만 김세진 작가는 단순히 두 편의 이야기를 이어붙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물형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네요. 어른들의 시각에서 규정당하고, 두려움에 몸 사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이는 어리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적극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지닌 소년! <양들을 부탁해>를 읽는 어린이 독자들도 소년의 모습에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