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 여행: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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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 선행 학습에 신경 쓰거나 취약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시킨 엄마들은 아이의 2학기 성적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고 하네요. 엄마들 얘기를 들어 보면 전반적으로 성적이 낮은 경우보다 아이가 아는 문제를 틀려 올 때가 더 속상하다고 합니다. 또 특정 과목을 유난히 힘들어하거나 다른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성적을 받는 것도 엄마들이 속상한 이유입니다. 이는 아이에게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지요.
다른 과목은 모두 1등급인데 수학 때문에 원하는 대학 진학이 힘들어진 고등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무리 과외를 해도 수학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집에서 다시 풀어 보면 아는 문제인데 시험 볼 때는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능 시험을 앞둔 시점에는 불안감이 커져 인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어떤 위로와 격려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한참 동안 애처롭게 바라만 봤습니다.
아는 문제를 자꾸 틀려요, 다른 과목은 점수가 잘 나오는데 특정 과목만 취약해요 등 성적으로 인한 엄마와 아이들의 걱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새 학기를 맞은 9월에는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수학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
찬우(가명·16세)는 차분하고 매사에 열심인 아이입니다. 책임감도 강하고요.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니 엄마는 아들을 일일이 지적하고 야단치느라 피곤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호감이 가는 외모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데다 공부도 잘하는 편입니다. 잘난 아들을 둔 찬우 엄마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요. 하지만 찬우 엄마에게도 남모를 고민이 있습니다. 아들의 성적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입니다. 수학 때문이지요. 찬우는 유독 수학 시험만 보면 아는 문제까지 자꾸 틀립니다. 다른 과목 성적은 늘 최상위권인데 언제나 수학에서 평균을 깎아 먹는 점수가 나와 반 등수가 5등 밖으로 훌쩍 밀려난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수학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아이에게 과외도 시켜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창 예민한 시기인데다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는 아이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그동안 내색도 못했습니다. 성적표를 받는 날이면 유독 예민해지는 아들이 딱하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고 답답해하던 차에 찬우가 상담을 받아 보고 싶다고 해서 연구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고 싶어 하는 엄마의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남자 중학생이 먼저 상담을 받아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일입니다. 찬우는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매사에 열심이고 책임감 있는 아이이니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건 당연합니다.

아는 문제인데도 시험만 보면 자꾸 틀려요
첫 만남에서부터 숨김없이 속마음을 털어 놓은 찬우는 자신의 상황이 무척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성적표만 받으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한 과목, 수학 때문에 발목이 잡힌다는 말을 하면서요. 수학만 없으면 전교에서 1등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속상하다고, 수학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안 그런데 유독 수학만 아는 문제를 자꾸 틀리고 집에서는 잘 풀었던 문제도 시험만 보면 푸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몰라서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습니다.
무턱대고 상담하기 전에 엄마와 찬우에게 한 가지 다짐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수학 성적이 오를 거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요. 저는 수학 전공자도, 학습 코칭 전문가도 아니니까요. 대신 누구보다 찬우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담을 통해 찬우의 스트레스를 줄일 방법을 찾도록 안내하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저도 심각한 수학 공포증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수학이 싫더니 중고등학교 때는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메스꺼움, 어지러움, 심장 두근거림, 복통, 발열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칠판 앞에 나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끄럽지만 꾀병을 부려 피했던 적도 있었답니다. 당연히 점수는 바닥이었지요. 찬우가 수학에 발목 잡힌다고 했던 말은 제가 중학교 때부터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기도 해서 그 심정이 이해되고도 남았습니다.

타 버린 날개를 다시 펼 수 있을까요?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나 있는 찬우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 위해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낙서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난화 그리기를 통해 이완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기대도 있었지요. 그런데 찬우는 연필을 꽉 쥐고는 종이에 구멍이 날 정도로 힘을 주어 종이 중앙을 까맣게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5분가량 지나자 새까만 돌덩어리 하나를 그려 놓았지요. 그것은 마치 운석처럼 보였습니다. 낙서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더라고 했더니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고 답합니다. 그러면서 “틀리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이더군요. 낙서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까만 돌덩어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은지 말해 보라는 미션에서는 “글쎄요. 내 마음…….”이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낙서가 마치 미술 작품처럼 보이니 제목을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잠깐 후에 “타버린 날개”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멋진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 제목에는 찬우의 절망감도 담겨 있었습니다.
찬우는 무엇이든 정확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아이입니다. 평상시 아들의 행동에 대한 엄마의 묘사와 찬우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수학 과목 때문에 전체 등수가 떨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자신의 날개가 타 버린 듯한 좌절감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틀려서는 안 되는 과목, ‘틀려도 괜찮아!’
수학 시험을 볼 때 찬우의 심리 상태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먼저 그림책 『틀려도 괜찮아』(토토북)를 활용했습니다. 중학생을 상담하는데 그림책이 웬 말이냐고 의구심을 가지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그림책 심리 여행 칼럼을 시작할 때 가와이 하야오(일본 융 학파의 선구자이자 임상심리학자)가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면서 그림책 예찬론을 펼쳤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림책이 지닌 치유의 힘은 연령에 상관없이 적용이 가능한데, 수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 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년 문학이나 자기 계발서, 장·단편 소설을 주로 보는 중학생들에게 그림책을 권하면, 처음에는 수준 낮게 웬 그림책이냐며 거부감을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랜만에 만나는 그림책에 대해 신선한 느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림책만 상담에 활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동시), 동화책, 청소년 문학,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넓은 범위의 문학에 해당하는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해서 자신의 문제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찬우를 상담하는 4개월 동안 여러 매체들을 활용했는데 여기서는 그림책을 활용했던 장면만 소개하겠습니다.

틀려도 괜찮아, 교실에선. 너도 나도 자신 있게 손을 들고 틀린 생각을 말해. 틀린 답을 말해. 틀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중략) 언제나 맞는 답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틀리는 게 무섭고 두려워져. 손도 못 든 채 작게 움츠러들고 입은 꾹 다문 채 시간만 흘러가. (중략) 구름 위의 신령님도 틀릴 때가 있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우리들이 틀린다고 뭐가 이상해. 틀리는 건 당연하다고. ―『틀려도 괜찮아』중에서

그림책은 “틀려도 괜찮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다 보고 난 찬우는 그림책이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3인데, 곧 고등학생이 되는데, 틀려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강조하기에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공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반색하더군요.
지금까지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어른들은 많았지만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고 “절대 틀리면 안 돼!”라는 뜻으로 들렸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2 여름 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찬우는 수학이 고질병이야.”라는 말을 한 것이지요. 안 틀려도 될 문제를 틀려서 평균을 까먹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약점을 들킨 것처럼 수치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수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학년 전체에 소문 났고요. 물론 선생님도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 말일 테지만요.
그날 이후로 찬우에게 수학은 틀려서는 안 되는 과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시험을 보는 다른 과목과 달리 수학은 더욱 집중해서 무조건 잘 봐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며 시험에 임하게 됐지요. 이러한 강박은 긴장으로 이어졌고 지나친 긴장이 생각하는 회로를 막아 머릿속이 새하얘진 겁니다.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예요
보통 아는 문제를 틀릴 경우 엄마들은 아이가 덜렁대거나 문제를 꼼꼼히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자들은 이를 메타인지적 지식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메타인지적 지식이란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은 내가 알고 있다는 느낌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는 지식이 진짜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공부한 내용이 친숙하고 많이 봤다고 해서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공부를 하면 모르는 내용임에도 안다고 착각하게 되지요. 이런 부분이 시험 문제로 나오면 곧잘 틀리게 되는데 아이들은 보통 이럴 때 아는 문제인데도 틀렸다고 변명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아는데도 틀린 것이 아니라 결국 몰랐던 내용이라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찬우는 경우가 달랐습니다. 학습클리닉에서 받은 여러 가지 검사 결과와 전문가의 소견을 엄마가 상세하게 들려주었는데, 찬우는 시험 보는 태도가 좋고 독해 능력이 우수하며 수학 기본기도 비교적 튼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수학 시험만 보면 아는 문제도 틀리는 걸까요?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습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벽이니까요. 찬우도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수학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문제였고요. 찬우의 머릿속은 온통 수학으로 가득해서 다른 과목에 집중해야 할 때도 ‘수학 공부를 더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림책 『파란 의자』를 보며 휴식을……
img_04저는 찬우에게 자신의 문제를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상담을 받는 시간만이라도 수학 생각에서 벗어나 쉬면 어떨까 하고요. 그리고 그림책 『파란 의자』(비룡소)를 보라고 권했습니다. 무척 재미있고 유쾌한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의 발랄한 상상력에 ‘큭큭’ 하고 웃게 되지요. 작가는 어른들을 향해 따끔한 침을 놓는 일도 빼놓지 않습니다. 모든 사물을 있는 대로만 보는 어른들의 고지식함에 대해서요.
주둥이가 긴 여우 에스카르빌과 강아지 샤부도는 동물들의 세계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친구 사이입니다. 어느 날 둘이서 사막을 걷다가 파란 의자를 발견합니다. 어른이라면 의자는 당연히 앉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샤부도는 의자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난 의자가 좋아. 밑에 들어가서 숨을 수 있잖아.” 에스카르빌은 한 술 더 뜹니다. “에이, 그 정도는 진짜 시시하지. 의자는 거의 요술이야. 개 썰매가 되기도 하고, 불자동차, 구급차, 경주용 자동차, 헬리콥터, 비행기, 음, 또 하여튼 뭐든지 될 수가 있거든.” 파란 의자는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상상에 의해 계속 멋지게 변신합니다. 그런데 둘을 못마땅하게 보던 낙타가 등장해서 찬물을 끼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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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가볍게 넘깁니다. “에이, 우린 가자. 이 낙타는 상상력이라고는 통 없는 것 같다.”라고 에스카르빌이 말하면, “그래. 거기다가 그냥 낙타도 아니야. 혹이 하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단봉낙타야.” 하고 정확한 걸 좋아하는 샤부도가 보태면서 말입니다.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117 | 글, 그림 클로드 부종 | 옮김 최윤정
연령 5~8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4년 3월 26일 | 정가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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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의자 (보기) 판매가 11,700 (정가 13,000원) 장바구니 바로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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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읽고 치유적인 상호작용으로 마음 달래기
찬우에게 지난번 만남에 이어 그림책을 본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가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 줬을 때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 같다면서요. 글자를 모르는데도 아무도 자신을 야단치지 않았고 수학이 뭔지도 몰랐던 그때가 그립다면서 찬우는 또 수학 얘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상상력 풍부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라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수십 년 전을 회상하는 어른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지금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다는 얘기인가?” 하고 되물었더니 “지금은 상상하면서 놀 나이가 아니죠.”라고 대답하기에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 중 지금 찬우는 누구를 닮아 있을까?”라는 치유적인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찬우는 “유치원 다닐 때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혼자 즐거워하는 에스카르빌, 초등학교 다닐 때는 상상을 하면서도 정확한 걸 찾으려고 하는 샤부도, 지금은 남들이 하는 유치한 얘기보다 현실이 더 크게 보이는 낙타.”라고 얘기했습니다. 누가 가장 행복해 보이느냐는 질문에는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에스카르빌을 답했고요. 지나치게 머릿속이 복잡한 자신이 피곤하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찬우에게 상처를 줬던 선생님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단봉낙타 선생님이라고, 수학 못하는 걸 꼭 그렇게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요. 찬우의 마음속에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나쁜 의도는 없었을 거라고 말했더니 의도가 어떻든 자기에게 상처를 준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수학이 주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선생님을 향해 마음껏 분풀이할 수 있도록 ‘미워하는 사람에게 편지 쓰기’ 활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쌓아 놓았던 말을 거침없이 써도 된다고 했더니 ‘단봉낙타 선생님 보세요.’라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분도 안 돼서 편지 쓰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으며 자신이 수학을 못하는 건 사실이라면서요.
선생님보다 나이가 훨씬 적은 자신도 벌써 현실밖에 모르는 단봉낙타가 되었는데 선생님을 탓하고 원망할 것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단봉낙타 선생님 얼굴에 점 하나가 있는데 앞으로 단점 낙타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줘야겠다며 즐겁게 웃었습니다. 이 별명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친구들과 공유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별명을 떠올리며 소심한 복수(?)를 할 거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찬우의 환한 웃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찬우는 자기의 마음 상태를 풍요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일러준 다음 답답한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찬우는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마인드 컨트롤과 지속적인 과외 수업을 얘기했고, 저는 가급적이면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수학을 생각하지 않는 것과 전체 성적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다른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수학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마다 펼쳐 보라며 『파란 의자』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찬우를 처음으로 활짝 웃게 한 그림책이라는 의미를 담아서요. 혹시 집에 그림책이 있으면 종종 꺼내 보면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보는 방법도 권했습니다. 이어진 상담에서는 찬우가 스스로 정한 것과 제가 제시한 과제를 얼마만큼 실천했는지, 변화된 점은 무엇인지 체크해 나갔습니다.

만약 수학을 100점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img_06존 버닝햄의 『네가 만약…….』(비룡소)은 찬우가 예전처럼 온통 수학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 준 그림책입니다. 『네가 만약…….』은 ‘만약에’ 라는 가정법으로 시작해서 가정법으로 끝이 납니다. 코끼리가 네 목욕물을 마셔 버린다면, 돼지가 네 옷을 입으려 한다면, 벌레 죽을 먹으라고 한다면, 오천 원 받고 죽은 개구리를 삼키기를 해 본다면, 함께 권투 시합하는 고양이를 갖게 된다면? 같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이어지지요.
책장을 한 쪽씩 넘기며 “네가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찬우가 엉뚱하면서도 독특한 답을 내놓는 바람에 둘이서 많이 웃었습니다. 후속 활동으로는 그림책을 패러디한 문장 완성 검사를 했습니다. 상담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에도 수학 때문에 여전히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최악의 점수부터 10점 단위로 수학 점수를 맞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고 문장을 완성해 보라는 미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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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가 쓴 문장은 이렇습니다. “0점을 맞는다면 아빠, 엄마가 기절할 것이다. 나도 기절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70점을 맞는다면 나를 칭찬해 줄 것이다.”, “100점을 맞는다면 앞으로 정말 정말 착하게 살 것이다.”
제가 100점을 맞으면 착하게 살고 싶다는 말은 좀 생뚱맞다고 했더니 한 번도 100점을 맞아 본 적이 없어서 100점 맞은 기분을 모르지만 세상이 달라져 보일 것 같다, 세상이 달라 보이면 왠지 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죽을병에 걸렸다 살아난 사람들이 앞으로 좋은 일 하면서 착하게 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요. 찬우에게 방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자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이 꼭 오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70점 밖에 못 받은 나를 왜 칭찬해 줄 거라고 썼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수학 점수가 70점대인데 높은 점수를 못 받아서 속상해 하는 것보다 낮은 점수를 받더라도 “이 정도면 됐어. 그래야 올라갈 목표가 있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 같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시리즈 비룡소의 그림동화 112 | 글, 그림 존 버닝햄 | 옮김 이상희
연령 4~7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3년 9월 29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독일 청소년 문학상 외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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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대한 내 마음을 조금씩 바꿔 보아요
찬우에게 “왜 진작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찬우는 ‘단점 낙타’ 선생님 사건 이후로 수학 때문에 체면이 구겨진 것 같아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는데, 상담을 받으면서 어차피 다 알려진 마당이니 자기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를 찾아보고 싶어졌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한 친구가 자기는 국어 때문에 평균 점수가 깎여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털어놓았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무척 친해졌다고 했습니다. 같은 처지의 친구를 만나니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어 좋고, 정말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니까 수학 시간이 전처럼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속상한 내색을 하지 않은 아빠 엄마에 대한 감사함도 내비쳤습니다.
중간고사에서도 시험지를 기다리는 동안 “까짓 수학 시험 50점 맞아도 괜찮아.”라고 되뇌었더니 긴장이 훨씬 덜해졌다고 합니다. 시험이 끝나고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과 답을 비교해 보니 15점 정도가 오른 것 같은데 성적표가 나와 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만약 점수가 제자리라면 실망은 하겠지만 예전처럼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상담을 그만 받아도 되는지를 묻더군요. 상담 종료를 위해 1회만 더 하자고 제안하며 찬우의 뜻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찬우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다시 마음이 요동치고 수학에 대한 두려움이 자라나면 언제든 다시 상담을 받으러 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상담이 끝나고 약 한 달 만에 찬우 엄마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찬우가 예상한 만큼은 아니지만 수학 성적이 10점 올랐는데 그동안 바빠서 미처 연락을 못했다는 겁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부터 시작해 여름 방학에는 주 2회씩 집중적으로 진행한 상담 결과가 저도 무척 궁금했는데 일차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와서 무척 기뻤습니다.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 부모가 되세요
찬우의 노력도 대단했지만 아들에 대한 아빠 엄마의 배려가 무척 멋있었습니다. 아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헤아려 긴 시간 동안 잘 참아 주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라고 얘기했지요. 모든 과목이 최상위권인데 한 과목 때문에 원하는 석차가 나오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히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인데 찬우 엄마는 내색하지 않고서 아들을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아이의 심리적인 원인을 배제한 채 과외 선생님이나 학원을 바꾸고 학습지를 더 풀게 하는 식의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찬우 엄마는 상담을 받고 싶어 하는 아들의 뜻을 존중해 매주 함께 연구소에 오는 수고로움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들과 데이트 한다는 생각으로 와서 상담이 끝나면 함께 맛있는 것을 사 먹거나 영화를 본다고 얘기하더군요. 찬우도 그 시간을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이처럼 아는 문제를 자꾸 틀리는 아이, 다른 과목은 점수가 잘 나오는데 특정 과목만 취약한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아빠 엄마가 문제를 읽어 주면 답을 찾지만 혼자서 문제를 읽고 풀어 보라고 하면 못 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쉬운 문제를 못 풀고 낑낑댄다면 해독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과목에서 아는 문제를 자주 틀리고 집에서 물어보면 다 아는데 막상 시험을 치면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읽기 능력에 대한 과학적인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정확한 검사 후에 부족한 부분을 전문가의 코칭에 따라 채워 주면 답을 아는데도 무슨 뜻인지 몰라 틀리는 일은 차츰 줄어들 것입니다.
만약 특정 과목을 어려워하고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심리적인 문제 때문인지, 정말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학습클리닉센터나 상담센터를 찾아가서 검사 받아 볼 것을 권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가 추측이나 진단은 금물이며, 다른 엄마들의 조언을 무조건 따라 내 아이의 상황에 맞지 않는 코칭을 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좋습니다. 대화나 놀이, 책 읽고 토론하기 등의 상호 작용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줄 아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무척 중요한데 이러한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그림책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루비의 소원』(비룡소), 『난 무서운 늑대라구!』(고슴도치), 『도서관에 간 사자』(웅진주니어), 『리디아의 정원』(시공주니어), 『도서관』(시공주니어), 『세쿼이아』(여유당), 『나, 화가가 되고 싶어!』(웅진주니어), 『그림 그리는 아이 김홍도』(보림)처럼 공부나 취미 생활을 스스로 찾아 즐기면서 하거나 꿈을 향해 매진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함께 보고 공부의 목적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아이가 공부나 특정 과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비룡소), 『수학은 너무 어려워』(비룡소)와 같은 읽기책을 활용하여 마음을 어루만져 주세요.

연령 6~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4년 3월 11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에즈라 잭 키츠상 외 3건
연령 8~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7년 11월 5일 | 정가 7,500원
수상/추천 교보문고 추천 도서 외 7건
연령 8~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7년 1월 20일 | 정가 8,000원
수상/추천 교보문고 추천 도서 외 2건

* 메타인지적 지식에 관한 부분은 네이버 캐스트 생활 속의 심리학「또 다른 지적 능력 메타인지」(글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참고했습니다.


d_img4글 :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소장)
대학에서 국어 국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아동가족상담과 문학치료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행복한 그림동화책 연구소와 마음문학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학에서 아동상담과 아동문학, 부모교육 등의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기획자, 특별 기고가로서 어린이책의 매력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림책으로 마음 나눔을 실천하고자 행복한 도서관 만들기 운동과 다문화 가정 그림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1. 2014.2.28 1:21 오전

    찬우군은 정말 언어이해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학생같아요^^
    찬우의 어머님이 존경스럽네요^^
    저도 이제 초등1학년 학부모로서 좀 더 으연하고 기다려줄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파란의자~ 제목만 보고는 그리 읽고싶단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저의 편견이었네요ㅎㅎ
    아이와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단봉낙타같은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