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년인가 <더기버>가 상영되었다.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보길 잘한 것 같다. 영화가 상영될때는 아직 책을 읽지 못한 상태였기도 했고, 영상물로 접하는 이야기들을 열광적으로 좋아하지 않아서 영화관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좋아하는 님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책과는 다르다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평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것 같다. 원작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를 만나기는 굉장히 어렵다.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 원작을 능가하는. 아니, 원작만큼이라도 되는 영화를 만나 본 경험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The Giver 기억전달자』를 만났다. 집에 『메신저』가 있는데, 이 책이 ‘더 기버’시리즈 중에 한권이라는 걸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얇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더 기버’.
내가 알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일까라는 고민은 ‘트루먼쇼’에서 이미 다뤄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선 트루먼을 제외한 모두가 가짜 세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가짜 세상을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그 세상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열두살 어린 소년이 진짜 세상을 접하게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답을 이야기 해줄수가 없다. 심지어 소년이 살고 있는 세상은 가족조차도 내가 알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모습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열 두 살, 성인이 되기 위한 직위를 받기위한 자리에서 부터 시작된다.
모든것이 완벽하게 표준화되어 있는 곳이 조너스가 살고 있는 마을 공동체다. 마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이곳은 각종 충동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고, 마을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행동을 표준화하고있다. 조너스는 부모님과 여동생 릴리와 살고 있는데, 릴리는 1살 때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 아이다. 릴리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살까지 공동으로 보육사가 돌보다가 한살 기념일에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아이들은 열두살때까지 매년 기념행사를 하게되는데, 나이마다 자켓을 받기도 하고 자전거를 받기도 한다. 9살행사에 자전거를 받기전에 자전거를 타면 법을 어기는 행위다.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열두살 기념행사로 아이들을 어릴때부터 지켜 본 원로들이 아이들의 직위를 정해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조너스는 듣도 보도 못했던 ‘기억 보유자’로 선택되어진다.
“네게 전달하려는 건 세계 전체의 기억이야. 네가 있기 전, 아니 내가 있기 전, 그리고 내 스승님이 있기 전, 그리고 그 스승님의 스승님도 있기 전 세대의 이야기야.” (p.132)
모두의 존경을 받고 거짓말이 허용되지 않은 공동체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위가 ‘기억 보유자’란다. 기억 보유자가 된 조너스는 기억 전달자에게서 조너스가 알지 못했던 전세계의 기억을 전달 받게 되면서 12년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것들을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 사과가 빨갛다라는 것을 알아버리고,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초록색이라는 걸 알아버린 소년. 다른 이들은 이걸 모른다는 것일까? 모른다. 오래 전 ‘늘 같은 상태’를 공동체에서 선택한 순간부터 마을 공동체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햇볕을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색깔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 시간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오래전인것은 확실하다. 기억전달자와 기억보유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기억을 혼자 가지고 있었을때는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지만, 기억전달자로부터 조너스가 행복하고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기억들을 조금씩 전달받으면서 그들은 함께 공유하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어린 조너스이 ‘임무해제’가 무엇인 줄 알게되고, 존경하던 아빠의 일을 ‘기억보유자’의 위치에서 보게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 공동체와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옛날 세상의 기억은 충돌을 하기 시작한다. 그 가운데에는 조너스가 ‘임무 해제’될 위기에 처한 가브리엘에게 따뜻한 기억을 전해주면서 진정한 가족애가 피어났는지도 모른다. 모든것이 규격화된 사회. 머리나쁘고 건강하기만 한 소녀들이 ‘산모’의 직위를 받고 아이를 낳아 공동체에 건네주는 사회. 정확하게 50명씩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있고, 한살 기념식에서 가족과 이름이 정해지고, 나이가 들면 노인의 집에 들어가 임무해제를 기다리는 사회. 자연스러운 성욕은 약으로 억제되고, 모든것이 규격화되어 규칙위반을 조심하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 이 사회는 꿈꾸던 사회일까?
미래의 어느시간인지는 알수 없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로이스 로리는 들려주고 있다. 오직 한사람을 제외하고 과거를 통제하고 인간의 욕구를 통제하는 곳.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의 피지배자를 억압하는 방법. 생각의 자유를 불가능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하는 사회. 로이스 로리는 이야기한다. 생각을 하는 단 한사람으로 세상은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기억 보유자이기를 거부한 조너스와 아기 가브리엘에게 펼쳐질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에굽을 나오면서 그들은 지상낙원을 꿈꾸지만 그 곳까지의 여정은 너무나 길었고, 노예였을지라도 에굽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듯, 조너스도 그럴지 모른다. 아이의 평생이 마을 공동체의 삶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움직이는 이들의 의지로 변화된다. 그자리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 그 변화가 선한쪽으로 움직이는지 악한쪽으로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또한 개개인의 의지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선물했고, 선물받은 이들은 사용할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조너스에게 화이팅을 외쳐본다. ‘조너스, 힘내~!’ 그래서 조너스가 만나고 만들어 낼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