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이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다. ‘그 책 만화책 아니에요?’ 하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만화책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그래픽 노블의 정확한 의미를 찾고자 사전을 살펴보았다. 그래픽 노블이란 만화와 소설의 중간형식을 취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일반 만화보다는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며 완결성을 가진 채로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책 역시 만화책처럼 쉽게 술술 읽혔지만, 분명 만화와는 다른 무거운 주제와 철학이 담겨진 책임이 확연히 느껴졌다. 처음엔 두꺼운 분량에 다소 겁도 났는데, 체감 상 한 시간도 안 되어 책을 다 본 것 같으니 그래픽 노블 특유의 속도감은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드레스를 좋아하고, 입고 싶어 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가난과 노동 아래 그 재능의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프랜시스라는 소녀가 만나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보는 동안 나까지 덩달아 함께 비밀스런 작전에 참여라도 하는 것 마냥 신이 났다. 드레스를 좋아하는 왕자와, 그런 왕자를 위해 드레스를 만들어 주는 여자 아이라니.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독특하고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특히 드레스를 입고 여장을 하며 몰래 바깥세상으로 나가 원래의 이름과 다른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지만, 분명 자신의 정체성은 확실히 하고 있는 왕자의 모습. 흔히 ‘성 소수자들은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는데, 전혀 다른 접근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점이 참 좋았다.
권위적이고 다혈질의 왕은 변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큰 충격에 빠진 채로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저러는 것이냐며 아들이 정체성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선 프랜시스의 입을 통해 분명히 전하고 있다. ‘왕자 세바스찬은 자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지 않으며, 단지 아버지가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할 뿐이었다.’ 라고 말이다. 이런 아들의 모습에 다혈질에 무섭기만 하던 왕도 함께 드레스를 입고 아들과 함께 패션쇼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책장을 넘기며 프랜시스가 만들어 내는 화려한 드레스들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어찌나 아름답고 독창적인 드레스들이 많은지, 프랜시스가 만들어내는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왕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책장을 빨리 넘길 정도였다. 숨어서 왕자의 드레스를 만들어내던 프랜시스가 점차 자신의 존재감을 찾고 재능을 인정받는 모습을 보아가는 모습도 참 좋았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책 속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책장은 쑥 하고 넘어가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어른이 보아도 아이들이 보아도 재밌을 책이다. 만화로 구성되어 있으니 만화책이다! 하는 편견은 버렸으면 한다. 이건 그냥 만화와는 다르다. 분명 작가의 철학을 담은 한 권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글, 영상, 회화, 음성 등 방식이야 어떠하든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된다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만화책이라는 편견에 휩싸여 이 책을 시작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지는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