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나무 위에 앉아 있다. 무엇인가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의 아이는 파랑 나라의 파비앙 왕자이다. 지금 빨강 나라와 파랑 나라는 전쟁이 한창이다. 빨강 나라의 쥘 왕자는 파비앙에게 결투를 하자는 쪽지를 보내온다. 전쟁도 말 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파비앙은 암양을 타고 갔는데, 쥘은 양의 울음소리에 놀란 말에서 떨어져 그만 죽고 만다. 파비앙은 속임수를 썼다고 생각하는 빨강 나라에 쫓기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랑 나라에서도 추방된다. 이제 파비앙은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나라 왕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은 노랑 나라로 왔고, 이제 굉장한 군대가 있다고, 그러니 내일 아침 전쟁터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하는 편지를 말이다. 노랑 나라 군대와 싸우러 나온 빨강 나라와 파랑 나라의 군대는 동맹을 맺고서 노랑 나라의 군대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나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이 되어서도 노랑 나라 군대는 오지 않고 양쪽 군인의 아내와 가족들이 모여들더니 열째 날이 되자 전쟁터는 무슨 마을처럼 보인다. 그제서야 파비앙은 노랑 나라를 찾아가는데, 노랑 나라의 왕은 파비앙을 가장 영리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노랑 나라의 왕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뒤 파비앙은 아주 훌륭한 왕이 된다.
파랑 나라와 빨강 나라, 노랑 나라라는 우화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전쟁이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모른 채 파랑 나라와 빨강 나라는 전쟁을 하고 있다. 실상 우리는 얼마나 전쟁의 이유를 알고 있을까? 과연 한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고귀한 명분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쟁의 무모함과 파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아이들 그림책에 ‘전쟁’이라는 제목이 붙어도 좋은 것인지 하는 의심 속에서도 2001년 유네스코 상, 1999년 크레티엥 드 트루아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소개를 믿고 이 책을 샀던 나는,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에 공감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좀 지루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단순해 보이면서도 인상적인 그림과 빨강:파랑:노랑의 대비로 이루어진 색깔과 특별히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내용은, 아이들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아마도 나처럼 이 책을 같이 읽는 어른들에게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썼던 2004년 11월에는 미군의 이라크 팔루자에 대한 대공세가 공격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언론의 취재를 막고 이루어진 미군의 팔루자 공세가 학살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렸었다. 그리고 자이퉁 부대가 주둔한 아르빌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모술에서도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전쟁이 남의 전쟁이 아니라 바야흐로 우리의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실감하면서 이 책을 읽었었다. 그러나 자이퉁 부대의 철군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의 자식이, 형제와 친구가, 삼촌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그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그들이 한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나 일본인도 더더군다나 아니기 때문에 죽어도 상관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