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를 기다리며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 직면한다면 누구라도 일단은 먼저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들과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만 하는 일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혼 후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무심한 아버지를 원망하는 병구와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 속에 매를 맞으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죄의식으로 느껴야하는 영모가 있다. 책을 읽어나가며 영모에게 매를 드는 아버지를 보며 참 한심한 부모라 생각하다 어느 한순간 흠짓 놀라고 말았다.
“다 너를 위해 때리는 거야, 매를 때려서라도 잘 키우는게 부모의 도리니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잘 해야 해. 그것만이 너의 인생을 보장해 주는거야. 너는 뒷받침을 얼마든지 해 줄테니 죽어라 공부만 하면 되는 거야. 너는 공부만 해.”
영모 아버지의 말은 내가 아이들에게 심심치 않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속에도 영모 아버지가 숨어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맞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영모의 말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짓눌려 자신을 포기해 버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이가 어릴 때는 간혹 매를 들기도 했다. 내 어릴 적에 그리 맞고 큰 기억이 없음에도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엇나가는 행동을 보며 매를 들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커가며 말로 해도 알아듣는다고 여기곤 말로 다스리곤 했다. 더군다나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서 무조건적인 부모의 지시가 통하지 않았고 의견을 물어 절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영모 아버지는 자신이 그토록 미워한 자신의 아버지를 어느새 닮아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버지의 기대가 아닌 자신만의 소중한 꿈이었던 조각이 불에 태워지고 영모는 사라졌다. 이젠 정말 영모 자신은 없고 아버지의 꼭두각시인 영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영모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물론 아버지에게 맞고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잃었다고 모두 집을 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술주정으로 엄마와 어린 동생을 쇠사슬로 때리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집을 나온 아버지와 조각을 태운 아버지를 미워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을 나간 영모는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둘의 관계를 해결할 열쇠가 이미 그 둘 속에 숨어 있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담이를 통해 영모가 사라진 담 너머 또다른 세상으로 간 병구는 숲이 알려준 길을 따라 간 통나무집에서 할아버지와 로아라는 소녀를 만난다. 조금도 낯설지 않은 통나무집과 낯설지 않은 할아버지는 병구가 영모를 찾는 일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숨고 싶어 찾아온 라온제나이니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폭력에 질그릇처럼 깨져 공격하고 싶어하는 자신이 무서워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고 한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소망하고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를 바랬던 할아버지는 떠돌이 생활이 자신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해 주었다고 말한다. 상처 입은 아이들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날카로워져 있을 때 무엇이 그들을 무디게 해 줄 것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이, 슬픔이 그 예리함을 갈아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병구가 영모를 찾아 라온제나를 찾을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아무런 욕심없이 진정으로 자유로움을 느끼는 라온제나가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 젊은 아저씨는 영모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아버지를 꼭 닮은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아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하는 영모 아버지에게 아저씨는 분노한다. 자신이 영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저씨는 애써 외면한다. 쉽게 용서할 수 없었나 보다. 무엇보다 자신이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남아있다는 것이 자신이 영모이길 거부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아닐까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확인하고 진정으로 영모를 찾길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아저씨의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세 번째로 찾아 온 라온제나에 영모가 있었다. 스스로 기억을 찾고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영모는 아직까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언제다시 악마로 변할지 모르는 아버지를 영모는 믿을 수 없었다.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 영모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느 기간 동안은 전과 다른 모습이겠지만 영모는 언제 아버지가 다시 옛날로 돌아갈지 몰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차리리 매를 맞을 때가 마음이 편하고 한동안 뜸하면 매 맞을 두려움에 떨었던 영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정폭력이 습관적인 것이라면 영모의 두려움이 기우는 아닐 것이라는 불안감을 씻을 수 없었다. 세 남자의 추격을 피해 영모와 할머니가 된 로아가 찾아 간 곳은 영모 아버지가 있는 통나무 집이었다. 영모 스스로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 온 것이다. 라온제나는 영모가 영모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라는 로아 할머니의 말을 가슴에 담고 영모는 라온제나를 떠나기로 한다. 아버지를 용서하지는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미움과 분노에 찬 아이들이 따스함과 즐거움으로 자신을 다독일 라온제나를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야겠다. 내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욕심을 접어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또다른 영모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