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담요 ‘뿌뿌’에 담긴 오웬의 마음
케빈 헹커스의 글과 그림에는 그만의 유머와 재치가 느껴져, 읽고 나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데 ‘내 사랑 뿌뿌’도 그렇다. 낡은 담요 한 장에 담긴 아이들의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해냈을까?
이제 학교를 입학 할 나이가 됐는데도 아직 아기 때 쓰던 이불 뿌뿌를 늘 끼고 다니는 오웬. 엄마 아빠는 거기에 별 생각이 없어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족집게 아주머니가 딴지를 건다.
다 큰 애가 저렇게 애기처럼 굴어서 어떡하냐고……. 그러자 그때부터 오웬의 부모님도 뭔가 잘 못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뿌뿌를 떼어 놓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전수 받는다.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도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아이한테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여기는 부모의 모습이 오웬의 엄마 아빠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한마디만 해도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저래서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 하니 오웬의 엄마 아빠가 느끼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간다.
뿌뿌를 떼어놓기 위해 족집게 아줌마는 여러 가지 비법을 가르쳐 주는데 그 첫 번째 방법은 요술담요 비법이었다.
요술담요가 뿌뿌를 데려가는 대신 굉장히 멋지고, 훌륭하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오웬은 그 모든 것보다 뿌뿌가 더 좋다. 그래서 잠옷 바지 속에
뿌뿌를 꼬꼬 쑤셔넣고 잠자리에 드니 요술 담요 비법이 통할 리가 없다.
두 번째 식초 방법, 오웬이 한 눈을 판 사이에 아빠가 뿌뿌를 식초에 적셔보지만 오웬은 그걸 마당에 파묻었다가 다시 파내고는 새 담요 같다고 말하니 식초 비법도 소용이 없다. 예전처럼 폭신폭신하지는 않지만 흔들어 댈 수도 있고, 걸칠 수도 있고, 끌고 다닐 수도 있으니 오웬은 여전히 뿌뿌가 좋기만 하다.
마지막 방법은 ‘안 돼’ 비법인데 족집게 아줌마는 이것을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권했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오웬의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었다. 뿌뿌를 학교에 데리고 갈거라는 말에 엄마 아빠가 무조건 안 돼라고 말하자 오웬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런 모습을 보니 엄마 아빠도 마음이 안됐는지 오히려 오웬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굉장히 멋지고,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대단히 근사한 생각을 해냈으니, 그건 바로 뿌뿌를 여러장의 손수건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웬은 굳이 뿌뿌를 떼어 놓지 않고도,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다른 애착대상물을 갖게 된다 하니 오웬한테 뿌뿌는 그냥 담요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생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주고 위로해주었던 뿌뿌를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떼어 버릴 수가 있을까?
우리 조카는 젖을 떼면서 엄마가 입던 윗옷에 애착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티셔츠였는데 잠을 잘 때는 물론이고, 울다가도 그 옷을 찾아,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울음을 그치곤 했다. 그래서 할머니집에 다닐 때도 늘 그 옷을 챙겨가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 밤에 깨서 옷을 찾을 때 비슷하게 생긴 다른 티셔츠를 던져주면 귀신같이 알아내고는 아니라며 그 옷을 달라고 했으니 그 옷은 돌을 지나 젖을 떼면서 뭔가 허전하고 두려웠을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대상이었다.
다섯 살이 되도록 그 옷을 가지고 다니던 조카의 모습이 생각나 뿌뿌를 떼어 내고 싶지 않은 오웬의 마음이 너무나 잘 와 닿는다. 다른 사람들은 집착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눈에는 엄마말고도 안정감을 주는 그런 대상이 있다는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다 큰 애가, 그것도 남자 애가 엄마 옷에 집착한다고 한마디씩 건넸지만 그 옷에 담긴 아이의 마음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오웬을 위로해주고, 오웬에게 뿌뿌를 떼어나지 않아도 되는 멋진 방법을 찾아준 오웬의 엄마 아빠를 보니 아무리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권한다 해도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은 그 아이의 부모가 가장 잘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웬의 마음을 헤아리고, 오웬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알아내는 엄마 아빠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