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가 사라졌단다. 왜 사라졌는데?
그러니까 말이지, 그게….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동학대문제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정이 아닐까 하는 거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던 아버지는, 그래서 그 아버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아버지는 자기 자식과 아내는 절대로 때리지 않는 그런 가장이 되리라 다짐하지만, 어느 새 그 폭력은 대물림 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상처 받는 어린 영혼이 있었으니, 그 아이의 이름이 영모다. 무언가 흉기가 있으면 아버지를 내리치고 싶었다고 고백했던 아이는 아버지를 피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 버린다. 그렇게 영모는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영모가 사라지고 퍼뜩 정신을 차린 아버지처럼, 사라진 영모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있었으니, 그의 단짝 친구 오병구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 그 우정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소유가 아닌,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뭔가가 있어 보이는 그런 아이. 친구를 진정으로 위할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가진 그 우정이라는 재산이 무척 부러웠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매를 때리는 아버지라지만,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바라는 병구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고통 받는 어린 영혼, 영모는 어느 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아버지한테 맞은 날이면 친구를 찾던 영모가 어느 날 사라지는 사건은 병구에게는 큰 사건이 되어 버렸다. 영모랑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따라 아파트 지하에서 고양이 담이를 만나고 담이의 안내대로 라온제나로 떠나는 병구는 그곳에서 라온제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라온제나의 시간은 현실 세계의 시간을 멎게 하고, 병구는 엄마가 잠든 틈에 아무 문제 없이 라온제나에서 영모를 만나고, 그리고 영모를 동심으로 돌아오게 하여 구해 올 수 있게 된다.
처음 병구가 도착한 라온제나의 봄에서 병구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여름에서 젊은 아저씨를 만나는데 거기서 친구 영모의 모습을 본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영모의 소망이 영모를 할아버지로 만들고, 그리고 다시 젊어지고 싶은 소망은 아저씨로 만든다. 그 사이 아들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를 만나면서, 갈등의 해결책이 조금 보이기도 한다. 병구가 다시 도착한 가을에서는 단짝 친구 영모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집으로 함께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겨 주어 안도하게 한다.
터널을 읽어주면서, 동생이 오빠를 찾아갔듯이 희망이도 찬이를 찾으러 가겠냐고 했더니 울면서 무서워서 못 간다며 엄마랑 같이 가자던 딸의 얼굴이 스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무섭지만, 친구를 구해서 머나먼 라온제나로 용기 내어 찾아 갈 그런 근사한 친구가 하나 생겼으면 하고 바래본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되어 주기를.
공지희 작가의 책으로 두 번째 읽은 책이다. 다음 책은 작년 반 아이가 자기 용돈으로 사서 읽고 학급에 기증하고는 책 들고 가라고 내게까지 준 책 <<마법의 빨간 립스틱>>을 읽어 보아야겠다.
*라온제나는 ‘즐거운 나’의 순우리말이란다. 황선미의 나온의 숨어있는 방의 라온, 나온과 비교해서 찾아봐야 할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