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이란 속담까지 있듯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주로 책 표지를 보고 책을 많이 고른다.
처음 책을 봤을 때는, 캐리커쳐된 4명의 아이들 모습이 정말 개성넘쳐서 인상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선택했는데… 중요한 건 역시 책 내용이다.
서울대 나와도 취직이 안되는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힌 한국사회에서
첫째, 가뜩이나 취업안되는 실업계 고등학생이고
둘째, 그 흔하다는 자격증 한 장 조차 없으며
셋째, 공부까지 지지리 못하는
안 갖춘 것 없이 다 갖춘 춘천기계공고 3학년 4명의 남학생들(재웅:주인공, 기준, 호철, 성민)이 이야기를 벌인다.
만든 목적이 공부하는 곳인 학교에서 노상 죽치고 앉아 게임하고, 야동보고, 잠깐 들러 급식 먹는 이 대책없는 아이들은
실습조차 가본 경험이 없었는데 장소가 강원도 원주라 지원자가 없던 탓에 지원자가 없는 추천이 생겨 드디어
그들에게도 실습에 가 볼 기회가 생긴다.
한 달에 고작 90만원이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생활하는 따분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에 재웅은
친구들과 함께 성급하게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자재과, 품질검사과, 정밀기계과에 배정될 거라는 야무진 꿈을 꾸면서 – 사건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 아프리카 흑인이 쭈글쭈글 늙은 꼴을 하고 있는 양 대리 가 등장부터 성격 모난 걸 여과 없이 드러내며
꾸질꾸질한 작업복으로 갈아입히고는 비포장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온 곳이 바로 두메산골, 추동리이다.
공장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정밀기계 또한 당연히 볼 수 없는 이 산골짝에서 그들이 시작하는 일은
송전철탑 기초공사 = 막노동,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이다.
말이 쉽지, 겪어보니 그것 참 할 짓이 못되는지 탈출을 감행했다 내부에서 배신자(성민)때문에 끌려와 다음 탈출을 계획하던
재웅은 새파란 조립팀이 지긋하신 기초공사팀이 말 한마디 잘못 했다고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는 걸 보고 분노하기도 하고,
육법전서를 들고다니는 고시생인 육법대사를 만나 신기한 얘기도 듣고,
추동리 산골짝에서 또래 여자아이를 만나서 짝사랑도 해보고,
양대리의 차를 몰래 훔쳐타고 노래방에 나갔다고 더덕 도둑도 쫓아보고,
송전철탑 공사때문에 오염된 환경을 보상하길 원하는 주민들 편에 서서 건설회사와 싸워도 보고,
친구들끼리 ggolzzi club도 만들고,
희진이 할머니의 장례식도 준비하면서… 4명의 사고뭉치들은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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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보다 더 어리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에 들어와 맘 다잡고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내가 이 책을 읽고서
사고뭉치들은 이렇게 세상을 배우고, 이런 경험을 통해 저런 것들을 배우며 성장한다~ 라는 투의 말을 하는 게 어색한 면도 있다.
이 책은 분명 나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고, 4명의 꼴찌들처럼 다이내믹한 경험;; 은 없었더라도 간접적 경험을 통해 나 또한 성장하
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단지 이 책 속의 꼴찌들보다도 덜 자란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게 창피하달까.
4명의 아이들과 내가 다른 것 중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나이다움’인 것 같다.
시기적절하게도 오늘이 밤새워 공부해서 3월 모의고사를 치고난 다음이라서 더 뼈저리게 느낀거지만. 나는 ‘나이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내 자신이 조숙하다거나 이런 말이 아니고, 나도 친구들과 떠들고 놀고싶고 허풍이 심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에 넘치고, 현실에 부닥쳐본 경험이 적으며,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 등은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들과 다른 건 ‘순수함’인 것 같다. 내 자신도 인정하지만 나는 ‘순수함’보다 ‘속물’ 쪽에 훨씬 가깝다.
일찍이 이익에 눈이밝아;; 재고, 따지고, 자랑이 아닌줄은 알지만 성적이나 겉으로 보이는 것들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도 있다.
위에서 말한 책표지로 책판단 하는 것과 같은 종류라 하겠다.
처음에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을 보고는 “하이고, 암담하구만.”
그 다음 이 아이들이 쓰는 말투, 하는 생각을 보고는 “노력안하고 거저 다 얻을려고 하는구만. 공부잘하는 애들 재수없어하지 말고 따라서 영어 단어나 하나 더 외워보지, PC방 갈 시간에 자격증 30개는 땄겠다,”
라면서, 아주 비판적 시각으로 책을 읽었다. 가끔은 나도 내 속물근성에 놀라곤 한다.
누구나 잘 하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가 공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밤새워 공부를 하고 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복습을 하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는
항상 그렇듯이 ‘나는 왜 공부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진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어떤 걸 느낄 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 새파란 주제에 발칙하게도 내 ‘속물근성’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들의 ‘순수함’을 부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