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오랜 유물인 양 익숙하고, 인터넷은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모든 것을 알려주는 어머니 아버지이다. 날로 우리의 눈은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지고, 몇 십 년을 굳건하게 뿌리내렸던 신문은 물론 교과서까지 생명을 위협받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심장을 가진 종이 책이 좋다. 어릴 적 맑게 눈을 빛내며 부모님의 청춘 시절 열정이 그윽하게 담긴 눅눅한 책을 하루 종일 읽고, 소풍을 가는 것처럼 도서관에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던 따뜻한 기억 때문일까. 핸드폰 액정 화면이 그야말로 신체의 일부분이 된 전형적인 신세대에게도 종이 책 본연의 향기는 아릿하게 젖어든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 될수록 좋다’ 는 말이 비단 그 둘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책 역시도 세월이 흐르고 흐르는 사이에 비록 제 몸뚱어리는 성하고 눅눅한 냄새를 풍길지라도 그 안의 열매는 더욱 속이 튼실해지며 우아한 몸짓으로 자신의 진가를 찾아 줄 현인에게 손을 내민다. 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유독 옛 책에 빛나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 땅 속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피어난 선인들의 마지막 유품인 그것에 어찌 매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아름답고 고고한 세월을 간직한 책. 더구나 인간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았던 영원한 지식과 권력이 담겨 있다면? 마땅히 모두가 제 아무리 처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속은 뜨거운 호기심으로 파르라니 타오를 것이다.
오금이 저려올 정도로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엔디미온 스프링은. 처음에는 무겁게 움직였던 내 손가락도 종국에는 그 달콤한 마법에 취해 한 마리 나비처럼 기쁘게 팔랑거렸다. 지금 어딘가에 그러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수줍은 상상만으로도 내 심장은 마치 그 책을 품에 안고 있는 것처럼 크게 발랑거린다. 이런 달콤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
결코 넘을 수 없는 시대라는 매혹적인 벽을 뛰어넘어 두 소년, 엔디미온과 블레이크는 만난다. 빵을 굽는 것처럼 노릇하게 온통 종이 향과 인쇄술이라는 신의 기술이 거리를 물들였을 구텐베르크의 시대. 그 거리를 뒤뚱거리며 거만하게 활보했을 요한 푸스트와 그와 어울리지 않게 정이 많은 페터 쇠퍼. 정밀한 묘사 덕에 당장이라도 눈을 감으면 슬며시 피어오르는 한 폭의 명화는 내 가슴을 더없이 설레게 만든다. 아주 허황된 인물이 아닌, 실제로 역사의 흐름 속 부유했던 그들. 그렇기에 저 먼 이웃나라에 살아있을 듯 파릇한 블레이크 남매와 함께 작가의 손에서 되살아나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역사의 인물들은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황홀감을 더한다.
상상력이라는 끝도 없이 거대한 펜으로 신비로운 세계를 재치 있게 빚어낸 작가가 놀랍다. 손이 떨릴 듯 세밀한 설정과 흡입력 있게 온 몸을 끌어들이는 이야기, 그리고 가슴을 크나 큰 긴장감으로 가득 메우는 절정까지. 지구라는 두려우리만치 광활한 땅덩어리에서 머릿속 에 그토록 방대하고 치밀한 이야기를 품고, 그것을 세상에 한 권의 책으로 낳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상력이라는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크나큰 업적이자 두근거리는 일일까.
나는 가슴속에 수줍은 욕망을 뜨겁게 간직하고 있다. 그와 같은 거대한 상상력으로 이 세상을 아주 먹음직스럽게 버무려 배고픈 인들에게 가슴이 먹먹할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 주고픈 욕망. 지금은 엔디미온과 블레이크가 보이지 않는 저 먼 위에서 방방 뛰어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찬란한 그 날이 오겠지. 아, 어서 굶주린 이들의 함박웃음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