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뻐꾸기가 다른 새 둥지에 알을 낳고 사라지는 것처럼 동재엄마도 여섯 살 동재를 외삼촌 집에 맡겨놓고 사라졌어요
열한 살이 된 동재는 사촌형 건이와 동생 연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외삼촌과 외숙모 말씀도 잘 듣는데다 학교 공부까지 잘해서 부반장이기도 해요. 그리고 씩씩하고 바른 데가 있어 모나지 않은 애어른같은 아이이지요
그런 동재에게 아주 큰 어른친구가 생겼어요. 바로 옆집에 새로 이사 온 902호 아저씨
소변 실수를 한 동재의 비밀도 감싸주고 운동화까지 깨끗이 빨아 슬며시 건네준 자상한 데가 많은 아저씨는 두 아들과 아내가 외국으로 유학나가 혼자 사는데 집안 청소며 살림은 별로이지만 동재에게 양파가 들어간 샌드위치도 만들어주고 동재가 실컷 컴퓨터를 할 수 있게 자기집 비밀번호까지도 알려주지요
엄마가 떠나버린 뻐꾸기 동재
가족이 떠나버린 기러기 아저씨
밝으면서도 연락이 없는 엄마에게 서운함이 있는 동재의 외로움
자상하면서도 가족이 떠난 외로움을 술로 달래는 아저씨..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 안하는 이들이 점점 서로에게 연민의 대상으로, 정을 나누는 존재로 변하게 되지요
‘아저씨 언제와요? 어디로 출장 간 거예요? 저, 아저씨가 쪼금 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좀 슬프거든요. 아저씨를 보면 괜찮을거 같은데..’
갈 곳이 없는 동재에게 아저씨의 902호는 동재의 쉼터가 되고 자신의 그런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도 아저씨에게 보낸 이메일이고 엄마를 찾아 나설 때 옆에 있어준 이도 902호 아저씨였어요
갑작스런 가출로 외삼촌과 외숙모를 놀라게 했던 건이형, 엄마가 아무말도 없이 외국사람과 결혼해 따로 사는 친구 유희… 이들은 동재와는 다르지만 또 비슷한 슬픔을 경험하고 있어요
글 속에 나온 ‘검은 연기’의 아픔처럼 말이죠
동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상황을 슬프게만 받아들이지 않고 무척 담대하게 어느땐 놀랄만큼 슬기롭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대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재엄마가 동재를 찾아왔을 땐 눈물이 났어요
우선 당장은 함께 살 수 없지만 뻐꾸기가 아니라는 말에 소리를 내지를 만큼 기분이 좋아 이제 스스로 당당하게 나는 뻐꾸기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 동재가 된 기분이었구요
동재에게는 다시 만나게 된 엄마가 아저씨에게는 미국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온 둘째 아들이 있어
각자 들어가는 집이 (그들이 사는 아파트 이름처럼) 이제 따뜻한 ‘둥지’일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글에서 느껴지는 안정감, 편안한 문체 그리고 동재의 마음 속을 꿰뚫는 표현과 사건들이 책을 덮지 못하고 앉은 자리서 모두 읽게 할 만큼 재미를 주더라구요
또 바로 옆집의 이야기 같은 상황,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적절한 갈등구조가 잘 짜맞춰져 수십 조각의 퍼즐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제 마음이 어려운 퍼즐을 다 맞추고 기지개를 켠 듯 후련하고 그러면서 또 아주 뿌듯했거든요
며칠 전, [나는 뻐꾸기다]의 김혜연 작가님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작품이 생겨난 동기와 이 책에 대한 소개가 있었어요
그동안 양파 넣은 샌드위치를 안먹던 동재가 아저씨의 양파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데,, 김혜연 작가님은 동재의 그런 모습은 어려운 상황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혹은 정신적인 성장을 상징하는 거라 하시더군요
그리고 동재의 용기와 아저씨의 지혜가 세대를 초월하더라도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셨어요.
[나는 뻐꾸기다]는 1013 초등학교 상학년을 위한 청소년 동화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아주 멋진 책이었어요
아이와 어른 사이의 우정, 동재와 기러기 아저씨의 비밀스러우면서도 달콤한 이야기들을 진솔히 표현한 이 작품은 비룡소의 2009년도 제 15회 황금도깨비상 장편동화부문 수상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