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는 서양의 춤이지요. 그래서인지 발레리나나 발레리노하면 금발이나 갈색 머리를 한 백인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요즘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고르게 발레극에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발레에 대해 갖게 되는 선입견이 있어요. 아무래도 동양인한테서는 발레에 적합한 체형이 나오기 어렵다거나 혹 좋은 신체조건과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배우려면 비용이 많이 들거라는..
지금도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나라도 가난하고 집안도 가난한 조건에서 발레를 배우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었다는 ‘리춘신’의 이야기는 기적같았어요. 그야말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리춘신은 중국 북부의 외딴 시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답니다. 그가 자랐던 시기는 모택동이 통치하던 때로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였고 나라와 국민은 무척 가난했다고 해요. 그의 부모는 자식들의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키워야했답니다. 게다가 리춘신의 집은 형제도 많았으니 사정이 더 안좋았겠지요. 그래도 분위기는 무척 화목했던 것같습니다. 아버지는 리춘신과 함께 연을 날리며 놀아주셨고, 그의 인생에 좌표가 되었던 옛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아들에게 미래를 향한 꿈을 심어주었던것 같아요. 어머니는 아이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를 했다는군요.
굶어 죽지 않는 것이 행운이라고 믿으며 살던 리춘신에게 어느날, 또다른 행운은 너무나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발레를 배울 어린이를 찾기 위해 정부 관리들이 학교를 방문한거예요. 선생님은 춘신을 추천하고, 춘신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나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몸을 쭉쭉 늘여야 했어요. 하지만 아프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지요. 또다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떠올랐거든요. 이 시험에 통과하면 우리 가족이 좀 더 잘살수 있게 보탬이 될지도 몰랐어요.”(본문 중에서)
어린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니.. 나는 어린 춘신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가 가족의 품을 떠나 베이징으로 간건 겨우 나이 열한 살때였습니다. 그는 외로웠고 실력도 많이 떨어졌지만 연습하고, 또 했다고 합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드디어 그는 실력을 인정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유명한 발레리노가 되죠.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중국에 계신 부모님이 미국에 오셔서 춘신의 멋진 공연을 보십니다.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 부모님은 꿈을 이룬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요? 춘신은 이 날 가슴이 행복으로 벅차올랐다고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해요. 아마 가슴 뭉클하고 감동적인 영화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그림도 무척 아름답고 정겹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림만 보고 동양화가가 그린줄 알았어요. 먹과 붓을 이용한 수묵화의 느낌을 잘 살렸더라고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그림작가인 앤 스퍼드빌러스는 이 작품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따로 동양화를 배웠다고 해요. 동양화풍의 기법이 사용되어서인지 리춘신의 중국 생활의 느낌과 여운과 감정이 잘 살아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꿈을 꾼다는 것, 꿈을 이뤄가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는 있지만 꿈을 이루는 건 그 꿈을 계속 간직하고 노력하는 사람의 몫인것 같았어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제 아이도 발레리노 리춘신을 보며 자기만의 꿈을 갖게되기를 바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