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심청전을 만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녀라면 단연 심청이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고 잘 알려진 심청이가 그림책으로 나왔다.
먼저 글작가가 어두운 주제도 유쾌하고 정갈하게 표현해내는 유은실이라는 점이 반가우면서도
그림책에서 만나는 그녀의 책이 과연 그림과 어떻게 어우러질찌 기대와 우려가 된다.
그림책은 글작가와 그림책의 작가의 호흡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심청이의 줄거리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새롭게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용궁으로 가 다시 환생하는 과정에서 심청은 태어나자 마자 병으로 잃었던 엄마를 만난다.
엄마의 부재가 어린이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와 심리적 장애를 가져다 주는가.
어쩌면 효녀 청이가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봉양하기위해 엄마 역할을 하고,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은 청이를 불쌍히 여긴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청이가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고난의 과정을 누구에게도 위로받은 장면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내가 읽어본 심청이 이야기에는 모두 그렇다.
그렇지만 이 책이 다른 심청이에 비해 더 따뜻하고 밝게 읽혀지는 이유는 청이가 용궁에서 엄마을 만난다는 것이다.
“아가 아가, 우리 청아.”
하늘 선녀가 된 청이 엄마가 찾아왔어.
“엄마 엄마, 추울 때 배고플 때 서러울 때
그렇게 불렀는데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청이는 울고 불고 떼쓰고 꿈같은 시간을 보냈어.
“아가 아가, 우리 청아, 상제께서 너에게 다시 한 번 생며을 주셨으니 귀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다시 만나자.”
책 속에서 엄마와의 만남은 짧은 이 몇줄의 이야기가 전부다.
그렇지만 정해진 지면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그림책에 작가는 짧은 이 몇 줄로 청이의 마음과 읽는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청이가 엄마에게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책 속에서 찾기 힘든 모성을 다시 떠오르게 하며 모성을 가장 근본으로 자라는 어린 독자에겐 아주 큰 안도감을 준다.
그림에서도 두 페이지를 한 면으로 활용하여 그렸는데
그림은 책을 펼쳤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레 서사적인 과정을 이야기하듯 잘 담아냈다.
굵으면서도 부드러운 선이 둥글둥글한 청이의 심성처럼 그려져있다.
흠이라면, 아니 꼭 고쳐야 할 것이라면 심봉사가 맹인잔치에서 홀로 술상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분명 글에서는 ‘초라한 노인 하나가 눈에 띄었지. 귀밑 검은 점을 보니 분명 아버지였어.’라고 씌여있지만
그림에는 점이 보이지 않는다.
심봉사만 부각하여 독자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크게 그렸음에도 귀 밑에 점은 없다.
어린이 독자는 민감하다. 글에서 나타내지 못하는 것도 그림에서 많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어린이 독자다.
하물며 글에서 등장인물에 차별화를 둔 부분이 그림에 반영되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이는 속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