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행운의 요정 마젤이 뒤에서 슬쩍 내 팔꿈치를 건드려 주기를..^^

연령 6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11년 12월 23일 | 정가 12,000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면서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뉴베리상’을 3년 연속 수상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와 그림책의 가장 뛰어난 삽화가에게 주어지는 ‘칼데콧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마고 제마크가 만난 『마젤과 슐리마젤』은 신간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림책이었다. 물론 무조건 번쩍거리는 뉴베리와 칼데콧 혹은 케이트 그리너웨이 메달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책 시장이 큰 영미권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해마다 수상작들이 발표되는 시기에는 많은 관심들이 쏟아지고 수상작이 결정되면 서둘러 한국어판을 출간하고 수상작가의 다른 작품들까지 덩달아 주목받는 것을 보면 메달을 신뢰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해마다 1월이면 수상작들이 발표되는데 2012년 수상작들이 바로 며칠 전에 발표됐다. 미국도서관협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따끈따끈한 수상작들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의 칼데콧 위너는 우리 아이가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글자 없는 그림책(“A Ball for Daisy” illustrated and written by Chris Raschka)인데다 유아책에 가까워 우리 아이와 시기적으로 맞지 않을 것 같고, 칼데콧 아너상(2,3,4등상이라고 생각하면..^^)을 받은 작품 중 두 작품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 “Grandpa Green”(illustrated and written by Lane Smith)과  “Blackout”(illustrated and written by John Rocco)이다. 아마존까지 휩쓸고 다니며 열정과 돈을 불사르는 정도는 아니니 한글번역판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의 작가들에 대한 화려한 비주얼을 읊어대다 보니 이야기가 삼천포로 많이 빠졌다.^^ 『마젤과 슐리마젤』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져 오는 옛이야기다. 행운의 요정 마젤과 불행의 요정 슐리마젤이 가난한 한 청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힘겨루기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요정이 지나던 마을의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행운의 요정 마젤이 일 년에 걸쳐 행복을 가져다주고 일 년이 끝나는 순간 불행의 요정 슐리마젤에게 넘겨주겠다는 조건이다. 대신 불행의 요정은 그동안의 케케묵은 방법들로 그 사람을 망쳐버리지 않는다는 단서를 붙인다. 예를 들어 사고나 병으로 죽게 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방법들 말이다. 불행의 요정 슐리마젤은 행운의 요정 마젤이 일 년에 거쳐 이루어 낸 행복을 단 일 분만에 망쳐버릴 수 있다고 장담한다. 행운의 요정 마젤이 뒤에 서 있으니 가난한 농부 탬은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고 꿈도 꾸지 못할 행운이 따른다. 왕의 신임과 공주의 사랑까지 얻을 위치에 올랐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위치에 오르면 그만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행운을 거머쥔 당사자가 과거를 잊어버리고 잔뜩 오만해져서는 행운을 걷어차 버리는 꼴을 당하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하지만 탬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도왔다. 자신을 시험하려 들고 곤경에 빠트리려는 무리들의 시험에도 묵묵히 임했다. 역시 행운은 아무에게나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우연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 같지만 성실하고 노력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이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탬을 넘겨주기로 한 일 년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왕의 병을 치료할 사자의 젖을 구하러 갔던 탬이 돌아왔다. 하지만 탬의 입에서는 사자의 젖이 아니라 개의 젖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 순간이 마젤에게서 슐리마젤에게로 탬의 운명이 넘어간 순간이었으니 슐리마젤이 장담하던 대로 순식간에 망가져 버린 것이다. 한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정정을 하기에도 너무나도 엄청난 말이었다. 지하 감옥에 갇히고 사형집행이 이뤄지려는 순간 다시한번 마젤이 탬을 향해 미소 지으며 위기를 벗어나게 되지만 행운과 불행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혀끝에서 나오는 한마디 ‘말’의 소중함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의 법전이라 하는 ‘탈무드’에는 말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출처가 어딘지 알든 모르든 탈무드의 교훈은 격언처럼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있다. 어느 날 일곱 살 아이의 입에서도 불쑥 튀어나올 정도다. 집에서는 귀찮을 정도로 수다스러운 아이가 유치원에서는 필요할 말 이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 게 안타까워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엄마, 그거 알아요?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인 이유는 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라는 뜻이래요.” 탈무드를 자신의 변호용으로 갖다 붙이다니 놀라웠다.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사람의 신체를 두고 만들어진 탈무드 속 이야기들 몇 가지 더 들려주고 탈무드에 대한 설명을 보태면서도 내내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선과 악처럼 극단적인 개념의 대결 구조는 늘 풍성한 얘기들을 만들어 낸다. 행운과 불행의 요정이 팔꿈치를 건드린 청년 탬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거친 선이 주는 경쾌함과 이야기 속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으로 예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는 마고 제마크의 그림에는 숨은 상징들이 가득하다. 대대로 전해오는 옛이야기고, 그 옛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한 이 그림책 또한 오랫동안 해를 묵힌 책이기도 하다. 다른 문학, 사상, 철학서적 같은 경우는 세월의 간격이 어쩔 수없이 느껴지건만 그림책은 5,60년을 훌쩍 뛰어넘어도 그 맛이 늘 신선하다. 그림책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