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말하는 아이, 지호는 학교에서 왕따예요.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피해 학교앞 횡단보도가 아닌 차들이 달리는 차선을 부리나케 뛰어 길을 건너죠.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고 집에 빨리 가기 위해 지름길을 택한 것인데. 버스정류장에서 왼쪽 길로 쭉 가면 지호네 집이 나와요.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길로 부르지만 소나무길 왼편, 한 줄로 늘어선 소나무들 뒤에 수풀이 우거진 낮은 언덕이 있는데 그곳에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놓았어요. 대낮에도 어두침침하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조금 위험한 그 길을 지호는 나뭇가지로 앞을 툭툭 치면서 걸어가요. 혹시 수풀사이로 또 뱀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런데 조금 심심해지려는 순간, 수풀 한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다름아닌 지호를 늘 괴롭히는 형규, 덕수, 희준, 세 악당이에요. 학교에서도 유명한 말썽꾸러기들이라 그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아이들을 괴롭히고 놀리고 말썽을 부리는 것밖에 없는 듯 시도때도 없이 지호를 놀리고 시비를 걸어요. 하지만 여기는 학교가 아니기에 소리를 지른다고 누군가 나타나 도와 줄 리 없고 혼자서 세 명을 당할 수도 없기에 기를 쓰고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요. 숨이 턱에 닿아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그들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달려요.
“너, 거기서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송지호! 너 꼴에 잘 뛴다.”
다음날 교실에 들어갔을때 지호는 세 악당과 눈이 마주쳤어요. 지호는 악당들이 자기를 그냥 두지 않을 거 같아 공부시간 내내 불안했죠. 심지어 수학시간에 칠판글씨가 잘 보지 않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선생님이 풀라고 한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어요. 그 바람에 수업이 끝난 뒤,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했고 늦은 시간에 아무도 없는 한적한 소나무 길로 들어서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랠기 없어 길바닥에 보이는 작은 돌들을 운동화 끝으로 차며 걷기 시작했어요. 어디 걷어찰 만한 돌이 없나 바닥을 살피며 길을 걷다.. 길을 걸어오다 본 돌 중 가장 큰 까만돌 하나를 발로 툭, 돌이 길 한가운데 데구루루 굴러가며 “아얏!”
다시 한번 툭, 돌을 차 보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아얏!” 분명 까만돌이 내는 소리였어요. 생긴 건 새까맣고 좀 거칠거칠한 남자 어른주먹만 그저 평범한 돌인데 왠지 도깨비 같은 것이 돌에서 튀어나와 소원이 뭐냐고 물을 것 같고 살짝 들어 뒤집어 보면 꼭 어딘가에 눈코입이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돌이었어요. 그 뒤로 지호는 말하는 까만돌을 베개 옆에 놓고 소곤소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으며 마치 친한 친구하고 수다라도 떨듯 오래도록 재잘거리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며, 오늘은 어떤 일로 화가 났는지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는 어떻게 생겼는지 쓸쓸한 어린 지호의 마음을 위로하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유일한 대화상대가 바로 까만돌이었거든요.
그렇다고 돌이라고 중간에 끼어들지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야단을 치지도 않으며 얌전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말하고 싶을때만 말하는 까칠하고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 좀 얄미운 녀석인데.. 지호 얘기를 듣고 “이유없이 괴롭힌다고? 그런데 왜 당하고 있는데? 왜 도망치는데?” 정곡을 찌를 때도 있거든요. 어느날, 지호 아빠가 지호 방문에 귀를 바짝 대 보니 지호가 분명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혼잣말하는 것일텐데 마치 누군가와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 다음날 지호아빠가 지호 서랍에서 까만 돌을 꺼내곤 주머니에 집어 넣고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산 중턱 바위 뒤에서 지호의 까만돌을 꺼내 한참을 바라보다 목청을 한번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죠.
“호, 혹시 지호가 너하고 얘기를 한 거니?”
“돌멩이는 말하면 안되나,뭐.”
“미리 말해두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을 때만 말해. 나한테 말하는 건 자유지만 뭘 기대하지는 말아줘.” 까만돌이 시큰둥하게 말을 이어가길 밤마다 수다쟁이로 변하는 지호가 학교에서 왕따라는 얘기를 꺼내자, 지호 아빠는 오랜만에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이 돌멩이라면 꼬치꼬치 뭔가를 물어보지 않을 거 같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속마음을 꺼내 놓을 수 있을 거 같았죠. 자신때문에 지호엄마가 죽고 사고이후, 스스로 말문을 닫은 가슴 깊은 속 돌덩이를 내려 놓는 기분으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한지, 학교준비물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화나고 속상한 일을 털어놓을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부모인걸 지호아빠역시 까만돌의 위안을 얻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어요. 어린 지호가 얼마나 가엾고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친구가 필요한지, 지금 여린 아이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자신이라는 걸 크게 깨달았던 거죠. 늘 입고 다니던 무릎나온 헐렁한 바지에 꼬질꼬질한 운동화 차림이 아닌 깨끗한 옷, 구두까지 신고 지호아빠가 학교에 나타나는 등 지호에게 좋은 일이 자꾸 생겨요.
지호 아빠가 예전처럼 웃는 것도 그렇고, 지호에게 먼저 다가가 어려운 학교숙제를 봐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안전한 학교 주변환경을 바꿔나가기 위해 솔선수범 앞장서는 모습까지… 지호는 더 이상 교실 칠판의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애 먹는 일따윈 없을 만큼 큰소리로 발표도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게 돼요. 실제 오스트레일리아 어떤 부족의 원주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돌에 깃든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알고보면 돌에게 물어봤자 답답한 마음만 좀 후련해질 뿐. 결국은 자기가 한 얘기 속에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상처뿐이던 어린 지호의 성장일기에 희망의 빛이 반짝, 끝내주게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는 말하는 까만돌의 신통방통한 능력은 쭈-욱 기대해 볼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