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뾰족하다. 역시나 시작부터 작품은 주인공 해일의 버릇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누구도 모를 것이라며 자신의 도벽을 천재적으로 저절로 움직이는 손탓이라 치부하는 해일이 전자사전을 훔친다. 전자사전을 잃어버린 지란은 모처럼 새 아빠에게 애교를 부려서 빌린 전자사전이 그렇게 되자 역시 자신은 안되는 거라며 관계회복을 포기한다.
소년이 전자사전을 용의주도하게 중고사이트에 올려 팔아치우는 장면에서 독자는 불쾌해진다. 알고보니 이 녀석은 혼자서 늘 집을 지켜야했던 어둡고 외로운 어린 시절이 있다. 녀석의 몹쓸 손이 활동을 시작한 때가 그때부터라니 불쾌함이 안타까움으로 바뀌지만 녀석의 가족들은 짐작조차 못하니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녀석에게는 따뜻한 가족이 있다. 티격태격하지만 걱정할만한 불화는 아니며 차라리 유치한 사랑싸움에 가까운 다툼을 하는 부모님은 끝끝내 자식에게 사랑과 신뢰를 쏟아붓는다. 유난히 손끝이 여린 막내에게 돈 때문에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홀로 두게했다는 안타까움에 늘 후회하고 사는 어머니는 시장에서 사온 값싸고 푸짐한 반찬으로 늘 따뜻한 밥상을 차린다. ‘감정설계사’라는 자신이 창조한 직업에 빠져있는, 다시 말하면 백수인 형 해철도 언제나 동생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던 녀석이 문득 자신이 순간 내뱉은 거짓말을 참말로 바꾸고 싶어서 유정란 부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순박하고 온정적인 가족들은 유정란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고, 두마리의 병아리가 태어난다. 달걀에서 깨어난 두 병아리는 고등학교 교실에 신선한 이슈가 된다. 이 따뜻하고 조그마한 생명을 보기 위해 해일의 주변에 친구들이 모인다. 지란, 진오, 다영 이들은 해일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따뜻하고 푸짐한 우정이 쌓아간다.
이렇게 해서 자신이 부화시켰던 유정란이 병아리가 되는 데에 성공하였듯이 소년에게 온기가 딱 맞는 부화상자가 갖추어 졌다. 가족의 사랑과 신뢰, 용기를 갖게할 만큼 결속된 우정, 그리고 다시 깨어나고 싶은 소년의 의지가 조건에 딱 맞게 조합된 것이다. 소년은 용기내어 오래 전부터 자신에게 박혀있던 가시를 뽑아낸다. 소녀 지란도 용기를 내어 가시고백을 한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가 꿈꾸었던 새 삶이 부화한다.
청소년소설의 키워드는 역시 우정이다. 아프지만 아픔을 감추는 척 하면서, 그런 척해도 다 들킬 수밖에 없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통해 가시를 뱉어내는 치유의 기록이다. 안타깝게 주인공들을 바라보던 독자의 시선은 어느 틈에 부러움으로 바뀐다. 제길! 이런 이상하게 따뜻한 우정이 있다니! 녀석들 참 행복하겠다며 책을 덮는다.
나에게는 이렇게 그 앞에서 가시를 뽑아낼만한 우정이나 사랑 가득한 존재가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또는 누군가 내 앞에서 자신의 가시를 웃음이 새어 나오도록 쑥쓰럽거나, 눈물이 나도록 아프거나 상관하지 않고 뽑아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역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따스함, 그것이 사랑이라 이름 붙여지던지 우정이라 이름 붙여지이던지 상관없이 우리 마음에 온기를 주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누구라도 겪었을 만한 차마 삼킬 수도 뱉어버릴 수도 없는 ‘가시’에 대해 작가는 그녀만의 화법으로 이야기했다. 불편하게 거슬리는 가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에도, 작가만의 쾌활한 유머가 작품 곳곳에 숨어있다.
김려령작가의 작품은 늘 재미있으면서도 가슴에 남는 바가 있어 이번 작품 또한 기대했었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이번 작품도 책을 덮고 나서 가슴에 잔물결처럼 남는 바가 있다. 우리 사이에 분명 있을 법한 펄펄 살아있는 주인공들이 이 책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