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손이 빨라 곧잘 물건을 훔치던 주보라.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한번 주먹을 들면 정신을 못차리는 이은성.
문제아들로 낙인 찍혀 소년원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된 둘은 뜻밖의 제의를 받게 되는데요.
바로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조건으로 소년원에 가는 것을 면제해준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디든지 답답하고 음식도 잘 주지 않는 소년원보단 낫겠지. 게다가, 실크로든는 말그대로 비단길아니야?
공짜로 여행도 시켜주니 얼마나 좋아?’
소위 “일짱” 공부를 할리가 없는 싸움꾼 이은성, 이렇게 무식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고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안내책자하나 펼쳐보지 않고 그대로 집을 나왔습니다.
‘어디든지 떠나고 싶어.. 한국만 아니면 되.’
조용하고 순종적인 주보라. 초반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없었죠. 이런 아이가 대체 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요. 똑똑하고 말도 잘듣는 아이가..
둘이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들의 삐걱거리는 실크로드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실크로드는 옛날 아라비아 상인들이 사막을 건너 동양과 서양 사이의 물건을 무역하러 갈때 걷던 지루하고도 긴 길이였습니다. 덥기만 하고 은성이가 생각했던 멋들어진 여행이 아니였죠. 그러나 보라와 은성은 이 길에서 “문제아”라는 타이틀에 가려져있던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둘은 그냥 사고를 치고 싶어서 문제아들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나름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보라의 경우는 항상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습니다. 집안에서도 공부만을 강요하고.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하나씩 물건을 슬쩍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은성에게는 그녀가 주먹을 들게 만들만한 다른 사람들의 도발이 있어서였지요. 은성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는데 이는 은성의 엄마가 미혼모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성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왈가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비아냥을 참을 수 없어 첫번째로 주먹을 사용한 이래로 점점 공격적으로 변하고 작은 말에도 주먹이 앞서가는 성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분노가 담긴 그녀의 주먹을 다른 친구들이 두려워하게 되자 그녀는 서서히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일짱” 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는 이런 힘세고 주먹만 앞서는 또래들, 그리고 그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습니다. 보라는 마음속으로 그런 사람들을 욕하고 또 혐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서로에게 한 다음부터 보라는자기가 혐오했던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에 대한 증오를 아무 관련 없는 은성에게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급격하게 나빠졌고 은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보라는 은성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며 어쩔수 없이 말을 해야할때면 기분 나쁜 투로 말을 툭툭 내뱉었습니다. 그래도 은성은 보라가 도망치려할때도 함께했고 몰래 뒤를 따르다가 보라가나쁜 불량배를 만나자 죽을 힘을 다해 옆에서 싸워줬습니다. 일행을 벗어나 둘만 함께하게 되자 못되게 굴던 보라도 조금씩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하게 됬고 은성도 자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 엄마는 자신을 별로 신경도 안쓴다고. 나는 괜히 태어나서 엄마의 혹이 되었던 것이라고. 내가 태어났기에 엄마에게는 미혼모라는 호칭이 붙었고 그래서 엄마는 나를 돌보지도 않고 창피하게 생각할거라고. 그렇지만 보라는 그래도 너희 엄마는 은성을 사랑하는 거라고. 어린 나이에 은성을 낳기로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낙타의 혹처럼 가끔은 무겁고 흉하지만 그안의 지방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은성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나중에 보라의 계획으로 그녀들은 다시 일행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들은 경도이탈로 처리되어 더이상 실크로드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고 아무 수도 쓰지 못한채 소년원으로 들어갈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 보라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소장님.. 저희 끝까지 걸으면 안되요?”
울음을 삼킨채 애절한 목소리로. 그만큼 은성과 보라에게 이 여행은 중요한 의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소장님은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 그녀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소년원에 간다는 조건 하에 여행을 계속해도 된다는 허가를 내주셨습니다. 그날밤 보라와 은성, 그리고 지도하던 안내자 언니까지 모두 울었습니다.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울음을 그친뒤 안내자 언니가 나가면서 했던 말. 그건 바로
“얼른 자라, 하이킹 걸즈.”
저는 그말이 너무 감동 깊게 들렸습니다. 하이킹 걸즈. 고난 끝에 다시 모여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될지라도 여정을 계속 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 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결심한 은성. 엄마를 다시 사랑하기로 결심한 그녀. 이제 더이상 피하지 않기로 한 보라.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괴롭히면 피하지 않겠다고, 돌아서서 그들을 당당히 마주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녀. 그들이 안내자 언니에게 메아리처럼 한 말은 두고 두고 제 마음속에 되새겨졌습니다.
“러허마이티”
그곳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보라와 은성이 안내책자를 보며 우물쭈물 배워갔던 위구르어. 한국말로 고맙다는 말이 머쓱했는지 위구르말로 조용히 속삭였던 그 말.
“러허마이티”
“그게 뭐야?”
“위구르어로 감사하다는 말이야.”
그 고생길을 다시 걷게 해준다는 말에 은성과 보라는 러허마이티라고 답했습니다. 그걸 보고 저는 드디어 그들이 진짜 자신들의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상처를 돌아보고 그를 통해 문제아라는 겉껍질을 벗겨내고 새로운 모습을 찾은 그들. 러허마이티는 그래서 더욱 더 아름답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이런 그들을 보고 저도 삐걱거리는 여행의 초반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막을 가로지르면서 오아시스도 만나고 아니면 그를 가장한 신기루도 보겠지만 그를 거쳐내고 나면 저도 언젠간 “러허마이티”라고 말할 순간이 올거라고. 모든것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