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회 황금도깨비상 그림책부문 수상작 <행복한 두더지>는 독창적인 판화기법이 돋보이는 판화 그림책으로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예술품같아요. 누가 이런 행복한 집을 상상이나 했을까? 무조건 지상 높이높이 꿈꿨던 우리의 행복은 얼마만큼 행복한 지, 행복의 기준부터 달라지네요.
어둑어둑 밤이 되면 일자리를 구하러 집밖을 나서는 두더지씨에게 행복은 하루라도 빨리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지만 매번 나쁜 시력과 소심한 성격탓에 변변한 직장을 구해지 못하죠. 어쩌다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홀로 길 한복판에 넘어져 있는 지 점점 용기를 잃고 땅 속 집으로 숨어 버릴 정도로 그에게 닥친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네요. 그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세상은 마치 어두운 밤과 같아요.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해져 혼자 차를 마시거나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쓸쓸히 잠드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에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용기를 내 보지만 세상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요. 어느 날, 우울한 마음을 떨치려고 서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 멋진 집이 나오는 책에 마음을 빼앗기곤 자신도 그런 멋진 집을 꾸며 보기로 마음먹어요.
더운 물이 펑펑 나오는 욕실을 만들고 온실처럼 아름다운 꽃도 가꾸고 누군가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근사한 거실도 만들어요. 누가봐도 집짓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걸 알만큼 정성들여 만드는 땅 속 집이 아늑해 보여요. 거기에 맛있는 음식까지 차려놓으니 추운 겨울을 나는데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단, 그가 여전히 혼자라는 게 슬플 뿐이죠.
똑똑똑, 다시 잠을 청할 무렵 도대체 얼마만에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인지 미처 겨울잠 잘 준비를 못한 동물친구들이 두더지씨를 찾아와요. 그 역시 얼마나 당황했으면 잠시, 머뭇거리다가 서둘러 추위에 떨고 있는 곰을 따뜻한 방으로 안내하죠. 늘 그가 혼자 망원경으로 텔레비전을 보던 방이에요.
그리고 다시 문 두리는 소리에 갑작스럽게 내린 눈 때문에 집을 잃은 개구리가 찾아왔어요.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없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따뜻한 욕조로 안내했어요. 또 다시 겨우내 먹을 식량을 준비하지 못한 토끼와 구렁이가 두더지씨 집을 찾아오자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식당을 안내했고요.
한밤중에 불쑥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하면서도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그의 표정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 어느새 제 집처럼 편안히 잠들어 있는 친구들 모습에서 진정 그가 고생해서 힘들게 집을 짓고 정성들여 집을 꾸몄던 이유가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비록 세상 밖은 여전히 차가운 바람과 거센 눈보라가 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게 제일 기쁘고 행복하죠.
혹 잠이 든 친구들이 깰까, 조용히 친구들 곁으로 다가가 함께 잠을 청하는 그에게 이같은 행복한 밤은 또 없을 거 같아요. 조금 뒤, 이 모든 것이 허탈한 꿈으로 다시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더 이상 마음의 상처따윈 받지 않을 용기가 그에게 남아 있는 듯 보여요. 아니 이미 그가 갖고 있는 놀라운 재능에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따가운 시선이 변했기에 곧 그가 좋은 직장을 구하든, 그에게 멋진 이웃이 생기든 그가 꿈꾸던 행복이 빠른 시일안에 똑똑똑, 찾아올 거란 믿음이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