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무서운 것들이 있다. 남들 눈에는 분명 아무렇지도 않은 하찮은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몸도 마음도 꼼짝없이 붙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것!
나는 길다랗게 생긴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풀려진 실타래나 뭉쳐 있는 노끈만 봐도 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ㅠㅠ 게다가 엄청난 길치라서 낯선 곳에 가면 길을 잃을까봐 두렵다. 그 두려움은 누구나 가뿐하게 따는 운전 면허도 못 따게 만들었으니….
두려움이란 부딪쳐서 극복해내야 하는 대상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능한한 피하고 싶은 건 생존본능이 아닐까?
우여곡절 끝에 <공포의 학교>로 보내어진 네 명의 아이들이 들려주는 사연 또한 만만치 않다.
심리치료와 최면술로도 고칠 수 없는 ‘매들린’의 공포는 ‘아라크노포비아’로 불리는 일명 거미 공포증! 무서운 것이 거미 뿐이라면 좋겠지만 나방을 비롯한 온갖 곤충과 벌레들이 혹여라도 몸에 붙을까봐 매들린은 자다가도 일어나 미친 듯이 살충제를 뿌려댄다.
세상 걱정은 혼자 다하는 ‘테오’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돌아올 꺼라고 믿는다.
지하철은 불이 날까봐 못 타고 비행기 안에서는 추락을 대비해 낙하산을 메고 있는 아이! ‘죽었나 살았나’ 공책에 가족들의 상황을 일일이 기록하며 데이트 중인 누나의 안전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전화를 걸어대고 잠시동안 휴대폰이 불통되었을 때는 엄마 아빠가 사라졌다고 공원 순찰대에 신고까지 했으니…
본인은 절대로 받아 들일 수 없지만 테오에게 내려진 병명은 ‘타나토포비아’.
테오에게 죽음과 죽는 일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 그 자체다.
‘폐소공포증’이 있는 ‘룰루’는 엘리베이터를 타느니 차라리 수갑을 차는 쪽을 택한다.
창문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며 갇힌 공간에 있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소녀!
제 아무리 높은 계단이라 해도 식은 죽 먹기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야 되는 순간에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최고다.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긴 ‘개리슨’이 겁쟁이처럼 물을 무서워 한다는 사실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히드라포피아’를 앓고 있는 개리슨은 드라마에서 바다 장면만 나와도 식은 땀이 솟는다. 아버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개리슨은 언제쯤 당당한 아들이 될 수 있을까?
매들린, 테오, 룰루, 개리슨이 모인 곳은 매사추세츠의 파밍턴에 있는 <공포의 학교> 서머스톤!
이름보다 더 황당한 학교는 위치부터 산꼭대기에 있는 데다가 교장이자 유일한 교사인 ‘웰링턴 부인’은 외모부터 아이들을 기겁하게 만든다. 대머리에 화가 나면 점점 붉어지는 입술색이며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자 ‘미의 여왕’이라고 말하는 공주병까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가르침이나 자격증 하나 없이 오로지 괴상한 ‘공포관’만을 가지고 있는 엉뚱한 할머니와 6주를 보내는 일이 가능하기나한 걸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도 못 보는 데다가 귀까지 들리지 않는 ‘슈미티’라는 할아버지는 구더기 치즈 맛이 나는 음식을 식사로 내어 왔으니 아이들의 표정이 어떠할지????
아이들은 되도록이면 빨리 그곳을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집중 또 집중한다. 하지만 웰링턴 부인은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미인 대회가 필요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입안에 바셀린을 바른 채 미소 짓기와 손 흔드는 법을 가르친다.
미인 대회가 공포를 극복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얌전하게 관이(?!) 놓여져 있는 공포관에서조차 상상 훈련을 견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
과연 아이들은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황당무계한 인물과 엉뚱한 공간 탓인지 공포와 싸우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가슴을 졸이기 보다 웃음이 먼저 터진다. 잠옷을 입고서 식탁에 앉아 사료를 먹는 블독 ‘마카로니’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창백한 얼굴에 노란 눈으로 노려보는 ‘먼초서’를 멀리서라도 본다면 무서워서 내가 먼저 땅굴 속으로 기어들어 갈지도 모른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숲속으로 들어가 ‘애버나시’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이야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며 엄청난 반전으로 끝을 맺는다. 공포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극복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 아이들!
어느 순간 그런 공포증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날이 분명 오고야 말리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있다. 두렵고 힘들지만 물러서지 않고 견뎌 나갈 때 우리는 삶의 또 다른 면을 맛보게 된다. 힘든 순간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으랴.
<공포의 학교>에는 공포가 없다. 대신 웃음과 따뜻한 감동이 있을 뿐.
두께만큼 가볍지 않은 얘기로 찾아와준 <공포의 학교>를 통해 자녀와 함께 내 안의 두려움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지 말고 용기있게 부딪혀 보라는 메세지를 전해 받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