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특강으로 아이 학교에서 독서교실이 열렸습니다. 안내서를 읽어보던 아이가 “근데, 동시가 뭐예요? 어려운 거 같은데 안 가면 안되요?”하면서 슬슬 발 빼려는 태도를 보였어요. “너 생각 안나? 엄마가 좋아하는 <마주 이야기>책, 거기 나오는 글 봤잖아.” 라고 얼버무렸지만, 엄밀히 마주 이야기는 아이들 입말을 받아 적은 것이지 동시라고 규정짓기 어렵네요. 그러고 보니, 아이에게 좋은 책 권해주기에 열심이라면서 정작 ‘동시’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이와 제대로 함께 읽은 동시집도, 시집도 없네요. 부끄러웠어요. <지렁이 일기예보>라는 제목만 듣고서도 ‘요새 환경 도서가 많이 나온다니까.’라고 지레짐작했으니 더욱 부끄러운 노릇이지요.그래도 다행히, <지렁이 일기 예보>덕분에 아이가 동시의 오밀조밀 아기자기 색다른 매력에 입문할 수 있었답니다. 작가 약력을 보지 않았던들, <지렁이 일기예보>를 처음 들춰보면서 아이들 동시모음집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단순하면서도 때론 촌철살인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아이들의 순진한 세계, 유강희 작가는 어떻게 1968년 생인데도 아이들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 눈을 들여다 볼 수 있을까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오리시인’이라는 별명을 괜히 얻었을 것 같지 않네요. 오리를 좋아하는 만큼 분명 아이들도 좋아할 거예요. 그런 아이 사랑의 마음이 있으니 시가 이렇게 맑고 순수하겠지요.
제목이 <지렁이 일기예보>여서 일까요, 유난히 날씨 관련한 동시가 많이 등장한답니다. 바람 이야기, 황사이야기, 비도 그냥 비가 아니라 장대비, 여우비, 가을비, 번개치는 날의 폭우 등 다양한 모습으로 시집에 등장해요. <나의 엉뚱한 머리카락 연구>의 작가인 이고은 그림작가도 유강희 시인의 동심을 잘 살린 일러스트레이션을 더해주었네요. 번개 치는 날 우산쓰고 가던 행인의 벌어진 입을 보고 아이가 낄낄거리며 좋아했을 정도니까요. 저는 ‘후텁지근’이라는 동시를 보고 낄낄 거렸어요.”아빠는 헉헉 숨이 막힌다고 말하고 / 엄마는 푹푹 찐다고 말하고 ……(중략)……..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말, 오늘은 학원 안 가도 돼” 숙제 안하고 개학을 맞으려 할 때, 비슷한 마음이어 본적이 있어서 왠지 웃음이 킬킬 터져나왔답니다.
“일기예보”라는 동시에는 꽃무늬 한복 치마에, 곱게 쪽진 머리를 하고 앉아계신 할머니 뒷 모습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더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일기예보가 빗나가면 “그럼, 하느님이 하시는 일 / 지들이 어떠코롬 다 맞혀!”하신대요. 귀여우신 할머니시지 않나요?
<지렁이 일기예보>를 읽으면서 아이와 제게 고무적인 발견은 툭 던진 듯 한 한 마디, 한 문장이 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는 점이지요. “안개”나 “가을비”는 불과 두 문장씩으로 대상에 대한 감상에 해석을 더해 시가 된 경우랍니다. 볼 때는 쉬운데 막상 써보려는 안되는 게, 동시의 불가사의한 특징이지요. 마음이 맑아야 한 두 문장으로 느낌을 전하는 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지렁이 일기예보>는 동시가 어려지 않음을, 사는게 신나고 궁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진이들에겐 더욱 쉽다는 사실을 알려준답니다. 먹구름을 보아도 즐거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우박을 보고도 하늘에서 볶는 얼음콩을 떠올릴 수 있는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지렁이 일기예보>를 읽다보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깨끗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8세 아이는 덕분에 동시 세계에 입문했고, 저 역시 맑은 마음에서 긍정의 기운을 얻어 가네요. 고마워요, 유강희 작가님,이고은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