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손 끝으로 쓸어보면 올록볼록하게 처리된 사자의 갈기가 만져집니다. 빛에 비춰보면 그 갈기의 일부가 번쩍이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구요. 아이는 책의 표지만 보고도 이야기의 내용이 궁금하여 어쩔 줄을 모릅니다. 녀석의 흥미를 그대로 연결하여 표지 사자의 모습을 판화로 찍어보기로 합니다. 그나저나 엄마, 『판화』가 뭐예요?
준비물은 우드락, 간단한 롤러, 판, 물감, 그리고 뽀죡한 샤프펜슬 정도입니다.
아이가 직접 우드락에 그림을 그릴 수준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우선 엄마가 밑그림을 준비해줍니다. 돌아다니는 비닐포장지 하나 재활용에서 꺼내와 우선 수성 싸인펜으로 표지를 따라 그리게 합니다. ( OHP 필름으로 하면 편리한데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재활용품을 늘 활용하게 되는군요. )
아이의 옷 사이에 껴있던 얇은 트레싱지를 그린 밑그림 위에 놓고 물티슈로 살짝 톡톡톡. 그럼 수성싸인펜으로 그린 그림이 트레싱지에 잘 묻어나오죠. ( 이 과정 또한 빳빳한 트레싱지가 있다면 곧바로 표지의 밑그림을 따라 그릴 수 있으니 생략 가능한 절차랍니다. )
그리고 그 트레싱지를 우드락에 올려놓고 뽀죡한 것으로 눌러 테두리를 표시해줍니다.
( 역시 곧바로 우드락에 그릴 수준이 되시는 분들은 불필요한 절차랍니다~! 그림 솜씨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그려보는 게지요. )
자~ 얼추 그럴듯한 밑그림이 나왔습니다. 책 표지를 보면서 연필로 조금 더 수정을 해주죠. 밤톨군 녀석은 우와~~ 잘 그렸다! 우리 미술 선생님보다 엄마가 더 잘 그리는 것 같아요! 라며 감탄을 하네요.
음.. 그림책 그림작가가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이라는 것은 분명해. 엄마가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자~ 이제 뾰족한 샤프펜슬의 끝을 이용하여 테두리를 파냅니다. 밤톨군은 콕콕 찔러 구멍을 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주욱 밀어내기도 하면서 신나합니다.
자, 이 틈을 이용하여 아이와 그림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거죠!
( 이 시간을 위하여 지금껏 사전 작업이 있어왔던 겁니다!! )
이번에는 책을 읽기 전, 독서전활동이니 표지를 보고 책의 내용을 상상해보기부터 하려구요.
: 밤톨군. 지금 그리고 있는 사자는 어떤 사자인 것 처럼 보여? : 아프리카 공화국(<– 녀석은 아프리카 대륙을 자꾸 이렇게 헷갈려합니다 ) 에서 뛰노는 사자요.
: 그렇네! 제목은 뭐라고 되어있는지 볼까? : 위대한 돌사자! 그니까 아프리카의 동물의 왕이 멋진 동상으로 된 걸 거예요.
: 그럼 그 동상이 어디에 세워졌는데요? : 음~~ 아프리카 공화국에요!! : 우와 그럼~~ 더 멋있을텐데 이 이야기는 아쉽게도 그곳은 아닌가봐. : 응? 그렇네~~ 도서관을 지키는 사자인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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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 대답하랴. 우드락 판화를 새기랴… 심각한 표정의 밤톨군.
녀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초원을 지키던 위대한 사자왕이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고 대신 죽었는데 그 마음을 기리기 위해 전 세계에 퍼진 거라는군요. 도서관에 세워진 이유는 ‘멋부리려고‘ 랍니다. |
멋부리려고…. 멋부리려고… 멋부리려고…
슬쩍 책을 들춰보며 그림속에서 본 아이의 얼굴에 라이온킹 이야기를 덧붙여 낸 상상인 듯 싶군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돌사자의 모습이 완성이 되어갑니다.
이제 본격적인 판화작업을 시작합니다.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판화도구셋트. 미니 롤러와 판, 그리고 물감.
롤러에 물감을 묻혀 골고루 우드락 표면에 문질러줍니다. 물감이 충분히 발라지도록 여러번 골고루 덧발라주는게 포인트. 그리고 준비한 종이를 덮어 골고루 종이 표면을 문질러줍니다. 잘 흡수되지 않는 종이라면 꾸욱~ 눌러주는 것도 좋더라구요.
이렇게 여러가지 색으로, 여러가지 종이에 원하는 만큼 찍어냅니다. 판화의 장점이 여러번 찍어낼 수 있다는 거니까요. 활동 초반에 녀석이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도 해줄 수 있게 되었네요.
판화란 나무, 금속, 돌 등의 면에 형상을 그려 판을 만든 다음, 잉크나 물감 등을 칠하여 종이나 천 등에 인쇄하는 것 이란다. 판에 새겨서 찍은 그림이라고 보면 되지. 우리가 여러장 찍는 것 처럼 다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원래 사자만 그리려고 시작한 우드락 판화였는데, 녀석이 제목도 적자고 해서 급히 제목도 적었죠. 그런데 판화의 속성을 깜빡한 엄마는 글자를 보이는 그래도 썼다가, 찍어보니 글자의 좌우가 뒤집혀져버렸습니다. 어찌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덕분에 녀석에게 판화의 속성을 하나 더 가르쳐줄 수 있었죠. 찍을 때 거울처럼 좌우가 바뀐다는 사실을요.
살짝 침울해하는 엄마를 위로하며 엄마 뒤집어서 불빛에 비춰보면 글씨가 제대로 나와요!! 라는 녀석! 그렇네요~!!
작업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하고 나니, 밤톨군 잘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녀석은 책이 궁금한 탓에 눈이 더 말똥말똥 합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볼까요!
위대한 돌사자 : 도서관을 지키다
마거릿 와일드 글, 리트바 부틸라 그림
출간월 : 2014년 12월
비룡소의 그림동화 – 232
36쪽 | 428g | 224*224*9mm
비룡소
밤톨군 녀석의 상상과는 달리 도서관 입구에 세워진 이 사자의 과거의 모습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도서관 입구에 세워진 돌사자는 웅크린 모습으로 움직일 수 없을 뿐입니다. 다만 그 모습이 워낙 살아있는 듯 생생한 탓에 도서관에 찾아온 아이들은 겁이 나 그 앞을 후다닥 뛰어가고는 했다는군요.
그저 차갑고 딱딱한 돌사자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가지를 궁금해 합니다. 돌사자에 기대어 책을 읽는 벤의 한숨이나 웃음에 ” 책 속에 뭐가 있기에 저러지?” 라고 궁금해하며 ” 행복이나 슬픔, 절망이나 희망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란 맞은편 돌괴물의 대답에 “나도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면… ” 이라고 바랍니다. 착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빌면 잠깐 동안이라도 살아날 수 있다는 돌괴물의 대답에 돌사자는 건너편 공원의 무성한 초록 나무들 사이에서 뛰는 것을 상상합니다. 살금살금 기어가다가 풀쩍 뛰어오르고 높이 솟구치는 모습도 말이지요.
어느 눈 내리는 밤, 집이 없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사라가 돌사자를 찾아와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놓고 쓰러집니다. ‘여기 있으면 큰일 날 텐데…. 사라와 아기가 금세 딱딱하게 얼어 버릴 거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돌사자가 뭔가를 그토록 간절히 빌어 보기는 처음이었지요. p14.
갑자기, 돌사자의 심장이 툭 뛰기 시작합니다. 갈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피가 흐르는 핏줄이 보이는 다리의 모습으로 그려진 모습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자신을 위한 소원을 빌었을 때는 주어지지 않던 생명이 다른 사람을 향해 품은 절실한 마음에 생겨 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 이렇게 더욱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돌사자의 눈앞에 그토록 꿈꾸던 드넓은 공원이 보였지만 돌사자는 아기 바구니를 도서관 안으로 옮깁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벤은 ” 돌사자, 너구나! 그래, 넌 항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어. ” 라고 대답하며 아기를 안아 올리지요.
창문 너머 바깥세상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몸이 점점 굳어왔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 사라를 도서관으로 옮긴 다음 간신히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돌사자는 다시 움직이지 않죠.
다음 날부터 아이들은 돌사자 곁에 모여들었습니다. 돌사자가 더 이상 차갑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원하던 바깥세상에서 마음껏 뛰어보지 못했지만 이제 돌사자는 살아 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되었겠지요. 돌사자의 따뜻한 마음은 두 아이를 돕기도 했지만 다시 그에게로 돌아와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되었을 테니까요. 남을 돕는 마음은 도움을 받는 이에게도, 돕는 이에게도 행복한 온기를 전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만나는 돌사자의 자세는 변함이 없으나 돌사자의 눈동자가 바라보는 곳과 표정은 페이지마다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리고 처음의 차갑고 무서운 표정은 이제 따뜻한 표정으로 바뀐 것이 확 드러납니다. 아이들의 손길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고양이 같기도 해서 함께 웃었습니다.
어찌보면 ‘행복한 왕자’ 와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르는, 그리 색다를 것 없는 소재임에도 이렇게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역시 글작가 마거릿 와일드의 스토리텔링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과 어울리는 부드럽고도 무게감 있는 그림은 차갑고 스산한 겨울 속의 차가운 돌사자의 모습에서 드디어 온기를 가지게 된 이후 함께 따듯하고 포근한 겨울이 된 듯한 양면적인 겨울의 풍경을 잘 담아내기도 했지요.
다시 글과 그림을 찬찬히 음미하듯 읽어봅니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기운이 서서히 번지는 느낌. 돌사자도, 읽는 이도 다함께 행복한 시간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