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속 한 아이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우리집 작은소녀가 떠오른다. 우리집 소녀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하다. 어버이날에 우리들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더라도 두 분께는 꼭 선물을 드리고 편지를 쓴다. 작은 아이가 수업시간에 학교에서 배를 그리고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려놓는 활동을 했다. 당연히 배 안의 사람들속에는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다. 배가 침몰 위기에 있어 한 사람씩 배에서 내리게 하는데 마지막으로 남긴 분이 할아버지였다. 할머니와도 친하지만 할아버지와 유독 친한 아이다. 그런 아이가 이 책을 만났으니 그 마음이 어떨까. 아이는 어쩌면 마음 한켠에 언제간 두 분과 헤어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울먹이는 아이다. 그러니 이 책을 꺼억~꺼억~소리를 내며 볼수 밖에 없는 것이다.
6학년 영욱이는 부모님과 누나,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신의 방이 따로 있지 않고 79살 표시한 할아버지와 방을 함께 사용한다. 아직 어린 아이지만 누구보다 속이 깊다. 할아버지와 방을 함께 사용하니 불편할텐데 불만이 없다. 오히려 함께 쓰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집 작은 소녀도 영욱이처럼 할머니와 함께 자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있었던 일을 쉴새없이 이야기한다. 거의 매일을 보는데도 늘 반가운 얼굴이다. 영욱이와 공감하는 것이 많아서인지 유독 관심을 가지고 본 책이다.
늘 함께 있을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떠난다는 것을 안다. 항상 죽을 나이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세상의 세 가지 거짓말중 하나는 나이드신 분들이 빨리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이라고 한다. 표시한 할아버지의 가족들도 할아버지의 그런 말들을 그냥 지나친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영욱이 뿐인 것이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해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 생각하니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지 않을까. 아직 어린 영욱이는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표시한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무능력한 아버지다. 사업실패로 인해 영욱이의 아빠가 돈을 벌어 다 갚아주었으니 아빠는 할아버지를 불만스럽게 바라본다. 영욱이는 다른 가족들을 이해할수 없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좋은 분인데 할머니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고 아빠, 큰 고모도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할아버지를 더 많이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와의 이별. 할아버지는 마지막 이벤트라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준비한 일들이 있다. 그것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황당한 사건이 된다. 아직 어린 영욱이가 이별을 맞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별이 죽음이라는 것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니 더 그럴 것이다. 죽음은 살아가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영욱이는 아직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아이가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무거울수 있는 주제를 담담하게 풀어가고 있다. 동화나 청소년 소설을 즐겨보는 분들이라면 유은실 작가의 이름만로도 믿고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전작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없고 많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볼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