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늘 죽음과 맞닿아 있지만 죽음은 너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언급하기가 겁이 난다. 그래서 죽음이나 장례식에 관한 것들은 어린이들에게 숨겨지거나 격리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모를 수만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초등학교 6학년인 영욱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되고, 장례식을 치루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쓰면 아마도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예비독자는 이 책이 아마 엄숙하고 우울할거라 생각할 수 있겠다. 천만에! 얼마나 웃기던지 쿡쿡 웃음을 참으며 읽는 대목이 많았다. 그런가하면 차오르는 감정의 밀물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할아버지를 사랑한 손자의 눈으로 할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을 대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공감할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영욱이는 할아버지와 한 방을 쓰고 있다. 늘 엄격하기만한 아버지보다 늘 격려해주시는 할아버지가 좋다. 손주는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면 잠이 솔솔 오고, 할아버지 이마의 검버섯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으며 놀기도 한다. 요새 아이답지 않게 별나게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이 손자는 할아버지가 바지에 오줌을 싼 부끄러운 사실을 숨겨주고자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전화해달라고 할 때 적극적으로 할아버지의 상태를 알리지 않는다. 결국 그 밤에 할아버지를 보러온 자식은 아무도 없었고, 손자는 아픈 할아버지와 잠이 든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져버리는 자식세대의 일상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펼쳐져있다. 눈물이 나는 대목이다. 손자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뒤이다.
장례식절차는 어른들에게는 절차와 격식을 갖추어서 치루어져야 할 하나의 과정이다. 엄숙하게 지나갈 것 같은 장례식 장면이 오히려 영욱이의 눈으로 보여지면서 코믹한 촌극 마당처럼 변한다. 화장실에서 전화를 걸어 옛날 장부를 찾아서 받았던 조의금 액수를 보고 되갚는 형식으로 조의금을 내자는 어른들이나, 슬프다면서도 돼지머리를 많이 갖다달라는 조문객들의 모습, 장례식장 앞에 놓은 화환을 통해 부유하고 가난한 차이가 나는 세태 등이 어린 영욱의 눈으로 묘사된다.
이런 요지경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깜짝이벤트를 준비해놓고 가신 할아버지 덕분에 정말 쿡쿡 웃음을 참으며 읽었다. 수의를 입혀드려야 하는 거룩한 순간까지 자식들을 혼란과 수치의 세계로 몰아넣으신 할아버지. 하지만 할아버지를 영원히 1번에 저장하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손자가 있으니 또한 행복하셨으리라 싶다.
어린이들에게 장례식의 절차와 의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는 책이다. 죽음이란 것을 어둡고 우울하지만은 않게 깜짝 해프닝 속에서 드러나는 해학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의 정도가 드러나는 마지막 이벤트가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