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중학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책을 잘 읽는 편이다. 그런데 초등 고학년이 돼서 두께가 있는 책을 읽게 되면서 점차 책과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오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 책을 싫어하는 아이로 극명하게 나뉜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중학생만 되면 웹툰을 바탕으로 한 만화책은 읽어도 일반도서는 도통 손에 들려하지 않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독서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 청소년 소설 읽기를 권장하는 편이다. 그러다 일정 단계가 지나면 인문학 서적이나 고전 명작 읽기를 권한다. 요즘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면서도 흥미로우며 지식도 많이 제공하는 좋은 인문학 서적이 많다. 그런데 고전 명작은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은 모든 사람이 읽기 싫어하고 모든 사람이 이미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책”이라고 정의했을까.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한다는 데는 동감하면서도 쉽게 손에 들지 않게 되는 책이 바로 이 책 <레 미제라블> 같은 고전 명작이다.
나 역시도 명작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 이름난 고전 명작은 앞부분만 넘기다가 그만둔 것이 여려 권이다. 그래서 청소년본이나 요약본으로라도 읽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청소년본이나 요약본으로는 원전의 의미를 알 수 없을뿐더러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다 읽은 듯한 착각을 가진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한 책보다는 비교적 원전의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한 청소년용이라도 읽어보려고 한다.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청소년용이라도 읽어보는 것이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고전 명작에 흥미를 갖게 되면 원전도 찾아서 읽게 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서 보게 된 책이 바로 <레 미제라블>이다.
재작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봤기에 줄거리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영화 내용을 연상하면서 비교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예전에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이 친숙했는데, 그 영화가 히트한 덕분에 이제는 원제인 ‘레 미제라블’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게 된 것도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대문호라 불리는 빅토르 위고가 쓴 이 작품은 끼니를 잇지 못하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개를 훔쳤다는 죄목으로 19년간 감옥살이를 장발장이 출소해 한 성당에서 은식기와 촛대를 훔치지만 자신의 죄를 덮어준 신부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선량한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는 내용을 닮고 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싼 신부처럼 자기도 타인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레 미제라블>은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 외에도 프랑스 대혁명 전후 시기의 프랑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여서 줄거리보다는 여러 가지 묘사에 치중하면서 읽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인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라든가 당시 사회의 풍속과 가치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또 다른 깊은 맛이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명작이라고 하면 너무나 문학적이어서 일반인에게는 어렵다는 편견을 주기도 하는데 비룡소에서 나온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옮긴이가 잘 해서인지 술술 읽히고 어려운 내용은 친절하게 각주로 설명해 놓아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또한 형사 자베르의 초상을 처음 그린 19세기 화가 브리옹의 삽화도 들어 있어 그림을 보는 특별한 재미도 준다.
이 책을 보면서 도둑에서 의인으로의 180도 변화가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억울하게 19년이나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단 한 사람(미리엘주교)이 자신을 감싸주었다고 해서 변모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로 하여금 빵 한 덩어리를 훔치도록 한 사회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 놀라웠다. 그것을 보면서 부조리한 사회도 문제지만 그런 사회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세상은 얼마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서 사람의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기 역시도 타인의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행동을 할 수 있는 큰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앞서도 말했지만 특히 이 작품은 영화로도 나와 있어서 영화와 비교해 보면서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우리 주위에는 이 책에 나온 장발장이나 팡틴과 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을 구하는 것은 정부나 사회이기도 하지만 우리 일반인 각자도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깨달았으면 한다. 뿐만 아니라 빅토르 위고라는 프랑스 대작가의 역량도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청소년들이 꼭 읽어보고 많은 것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