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과 경외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수령을 짐작케 하는 굵은 둥치와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들, 무성한 잎사귀, 그리고 비바람을 견뎌내는 듬직한 모습까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존재하는 모습은 신령한 느낌이 들고도 남을게다.
100년? 150년 쯤 된 팽나무가 주인공인 이 책.
마을 사람들의 성황신 노릇을 하던 팽나무는 사람들의 소원과 푸념과 신세한탄과 비밀을 들어주며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고구마 아주머니의 소원을 하늘에 전달하여 소원소원하던 아들도 낳게 해준 팽나무는, 그렇게 해서 태어난 특별한 아이인 성준이가 사고를 치고 마을을 떠나던 날 벼락을 맞아 절반이 불에 타고, 그 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채 그 날 태어난 어미 잃은 아기 박새의 엄마가 된다.
아기 박새는 팽나무에 살며 마을의 소식을 전해다 주고, 기억을 잃은 팽나무는 박새가 전해다주는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에서 사라진 자신의 과거를 궁금해한다.
마을에 새로운 집이 이사오고, 새로 이사온 집 여자아이는 깃털이 뻗친 박새를 보고 왕관을 쓴 것 같은 새라고 불러준다. 박새는 아이들의 집에 날아가 심장수술을 한 여자아이 때문에 마을로 이사 오게 된 것과 현지와 현우 남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몸이 약해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현지는 옆집의 고구마 아주머니와 팽나무 앞에 만나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란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하지만, 팽나무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속상해한다.
겨울, 고구마 아주머니의 아들인 성준이가 몇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성준이는 산에서 목수 아저씨를 만나 이것저것 작은 조각들을 만들어보기 시작하고, 현지의 동생 현우와도 잘 어울리며 놀아준다. 박새 공주는 다른 새들과 달리 짝짓기나 둥지를 짓는 일을 하지 않고 지내다 마음에 드는 수컷 박새를 만나 팽나무에 둥지를 꾸리게 된다.
힘들게 겨울을 난 팽나무는 이듬해 봄,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다시 한 번 벼락을 맞아 꺾이게 되고, 꺾이면서도 마지막 힘을 모아 팽나무에 둥지를 튼 공주와 공주의 알을 지켜낸다.
쓰러진 팽나무를 두고 마을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한데, 목수 아저씨와 성준이가 제사를 지내주고 팽나무를 가져다 목재로 만들어 현지와 현우를 위한 나무배트와 촛대를 만들어 이름도 붙여준다.
성준이는 쓰러진 팽나무 옆에 작은 팽나무 묘목을 심고, 쓰러진 팽나무를 잘라 만든 버팀목으로 지지대를 세워준다.
왠지 시골 어느 마을에 실제로 있을 법한 나무와 그 나무를 둘러싼 이야기.
일견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연상케 하는 이 책은, 소박하고 따뜻하며 배려깊은 이야기여서 읽고 나면 목구멍이 따갑게 치밀어오르는 울컥함으로 끝을 맺는다.
항상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던 팽나무.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였을 때도, 벼락을 맞아 기억을 잃은 뒤에도 팽나무의 시선과 관심은 온통 마을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뒤 처음 마주친 아기 박새에게도. 박새에게 엄마 소리를 들으며 박새가 자랄 수 있게 벌레를 떨어뜨려주고 품에 품어준 나무.
친구와 크게 다투고 마을을 뛰쳐나가 결국은 교도소까지 들어갔다 돌아온 성준이가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나무에서 무언가를 찾아 만들 수 있게 알려준 목수 아저씨 덕분이기는 하나 팽나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흉악한 범죄들로 뒤숭숭한 요즈음에, 모처럼 따뜻한 이야기를 만났다.
날라리
음악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