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소의 그림동화 239
행복을 나르는 버스 / 맷 데 라 페냐 글,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 / 비룡소
행복을 나르는 버스. 행복을.. 나르는..
되뇌일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제목입니다.
칼데콧 명예상, 뉴베리 상, 코레타 스콧 킹 명예상의 수상 딱지들이 휘황찬란하게 붙어 있는
뭔가 대단해 보이는 책이고,
이런 수상 딱지에는 오히려 반감이 드는 체질이라 가볍게 넘겨 버릴 수도 있는 책이었습니다.
분명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의지와 행동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더 적극적으로 먼저 마음을 열고 읽었습니다.
하나같이 미소 짓고 있는, 둥글둥글한 이미지의 사람들이 마구 끌어당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자연스럽게 표지를 펼쳐보니 역시나 한 대의 버스가 만들어집니다.
탈 것을 사랑하는 둘째는 이 그림 하나로 환호성을 질러댔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그런데 이 표지 그림에 신기한 마법이 숨어 있었어요.
표지 부분에는 분명 버스 가운데 검은 상자에 불을 뿜고 있거든요.
이 버스는 ‘불 뿜는 악어 버스’니까요.
그런데 쫙 펼치니 불꽃 두 개가 모여 예쁜 하트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마법에 신기해 하며, 그렇게 기분 좋은 시작으로 책장을 엽니다.
교회를 나선 시제이는 할머니에게 온갖 불평과 불만들을 쏟아 놓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옷이 축축해지는 것도, 친구 콜비네처럼 자동차가 없어 버스를 타는 것도,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지 않고 ‘거기’에 가는 것도..
그러나 그 때마다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행복한 대답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시제이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도 마음을 깨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시제이, 꼭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귀로 세상을 본단다.”
“시제이, 저길 보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단다.
늘 무심코 지나치다 보니 알아보지 못할 뿐이야.”
“엄마, 이거 우리 아빠가 나한테 해주는 마술이랑 똑같은 거예요!”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 중 하나인 데니스 기사 아저씨의 동전 마술은
늘 아이를 즐겁게 해주려고 동전 마술을 보여 주었던 아빠를 떠올리게 했고,
아빠의, 그리고 데니스 기사 아저씨의 마음을 금세 읽어내게 했습니다.
기타 줄을 맞추는 남자, 나비가 든 유리병을 안고 있는 할머니, 눈이 보이지 않는 아저씨 등
버스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은 할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저마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늘 무심코 지나쳐서 몰랐을 뿐.
시제이가 점점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과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흐뭇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루한 가르침 혹은 엄격한 꾸중 대신
잔잔하고 묵묵한 미소와 지지의 말로 이루어내는 시제이의 할머니 역시 감동이었구요.
부서진 보도와 망가진 문, 낙서로 뒤덮인 유리창.
지저분하고 어찌보면 음침하기까지 한 동네의 하늘 한 켠에 뜬 무지개는 ‘희망’이었습니다.
시제이가 부정적인 어둠의 공기 속에서 마침내 빛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행복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을 나르는 버스는 누구에게나 달려갈테니까요.
언제나, 어디든.
–
‘독서 활동지’가 부록으로 들어 있어서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해 보았습니다.
‘다른 곳을 찾아요’, ‘내가 마주쳤던 사람 그리기’, ‘내가 살고 있는 마을’, ‘그림책 깊이 읽기’의
모두 네 가지 활동이 제시 되었어요.
아이들의 흥미를 끌만한 다른 그림 찾기,
이야기를 깊이 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확장 활동까지 다양하게 제시가 되어 좋았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나 도시 풍경을 그려 보는 활동을 가장 신나게 했어요.
색칠하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지라 그림만 자유롭게 그려 보라고 했는데
사람보다는 주변 풍경들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통영, 바닷가에 작년에 이사와서 여전히 아이 머릿속에 가장 좋은 것은 ‘바다’인 모양입니다.
가장 먼저 그린 게 바닷가 공원이었어요.
이사 와서 또 좋은 것 중의 하나가 매일 놀이터에 가는 것!
두 번째로 그린 건 당연히 놀이터였구요.
집 앞의 오가다 카페, 초록마을 가게.. 모두 아이가 좋아하는 단골 가게네요.
어린이집, 피아노학원을 그려 넣고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곳들이라며 소개해 주었어요.
이 중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나 사물, 반대로 기분 안 좋게 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이야기 해 보았는데
기분 좋게 하는 건 무척 많다는데 기분 안 좋게 하는 건 하나 있대요.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자동차들!”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들, 빨간 불인데도 멈추지 않고 가는 차들,
인도에 주차한 차들 등등..
하나하나 꼬집어 말하는데 괜히 제가 부끄럽더라구요.
어른들의 부끄러운 민낯에 많이 반성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나르는 버스는 언제나, 어디든 달려간다고 했잖아요.
아이도 늘 그 버스를 타고 있는 거라고,
우리가 행복을 나르며 전해줄 수도 있고, 때론 슬플 때 타인이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도 있고.
그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가치와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곱씹어 보는 것 같아 대견했어요.
공주 이야기, 재미있고 웃긴 이야기만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보여 준 진지한 모습에, 아이가 한 뼘 더 자란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