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보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꽃 바구니를 들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한 쪽을 쳐다보고 있다.
뒤표지.
낙천주의자의 대명사 폴리애나! 1900년대 미국 전역에 기쁨 신드롬을 일으킨 주인공. 작은 소녀가 일으킨 놀라운 변화와 행복의 물결.
열한 살 폴리애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유일한 친척인 이모 폴리 해링턴 양의 집에서 살게 된다. 집안에 내려온 저택을 홀로 지키던 해링턴 양은 엄격하고 냉담한 자신의 성격과 달리 활발하고 꾸밈없이 순수한 폴리애나의 말과 행동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폴리애나는 자신만의 기쁨 놀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놀랍고도 행복한 기운을 안겨 준다.
뒤표지만 읽고 왠지 다 알겠다는 느낌이 들지만 책을 읽으면 360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빨강머리 앤도 생각나고 소공녀도 떠오르는데 폴리애나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어린이가 복잡하고 이해타산적인 어른들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받았지만 사전에도 오를 만큼 (폴리애나 – 지나친 낙천주의자)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작가 엘리너 H 포터의 활기차고 밝은 성격이 폴리애나를 닮았다고 한다.
제니는 오래 전 선교사의 아내가 되어 가족과 연을 끊었고 (두 여동생 폴리와 애니의 이름을 딴 딸 폴리애나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마지막) 몇 년 뒤, 목사가 제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부모님과 언니들이 모두 죽고 부모님이 남긴 저택과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마흔 살 해링턴 양은 집안 일을 돌봐주는 낸시와 톰 영감 가족들과 지낸다.
해링턴 양은 존 휘티어 목사가 죽었다며 열한 살 외동딸인 언니의 조카를 맡아달라는 편지를 받고 기꺼이 맡겠다고 답장을 보낸다. 자신이 불쾌한 임무를 다할 수 있을 만큼 의무감이 강한 사람이길 바라며. 낸시는 방도 많은데 아이를 조그만 다락방에 재운다며 투덜거리고 해링턴 양을 대신해 폴리애나를 마중간다. 교회 부인회 아주머니들과 지내다 가족이 생긴 폴리에나는 이모를 보자 기뻐하며 가방과 옷에 대한 설명을 한다. 낸시는 폴리애나가 마음에 들어 고향에 가려던 생각을 접고 해링턴 양과 폴리애나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한다. 이모가 아빠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자 폴리애나는 당황하다 오히려 기뻐한다. 카펫도 거울도 그림도 없는 다락방을 그녀만의 생각으로 기뻐한다. 거울이 없으니 주근깨가 안 보여서 기쁘고 창문 밖의 풍경이 그림이라며 기뻐한다.
그 후 해링턴 양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폴리애나는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바느질과 요리 배우기, 소리내어 책 읽기, 피아노 치기 등 이모의 규칙에 맞추어가지만 아빠와 만든 ‘그냥 기뻐하기’ 놀이를 하며 사람들과 만난다. 물론 이모 앞에서는 아빠 이야기를 꺼낼 수 없어서 이모에겐 말을 못 하지만 해링턴 양은 폴리애나가 온 뒤로 애초에 하려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일을 하게 되고 방을 옮겨준다. 해링턴 양이 폴리애나가 데리고 온 길 잃은 새끼 고양이와 더러운 개를 받아들이자 일을 하고 싶어한다며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길에서 만난 지미라는 소년을 데려오지만 반대한다.
심부름을 하며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말이 없고 모른 척 하던 ‘그 아저씨’와 인사를 하게 되고, 병들고 가난한 교회 신도 ‘스노 부인’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서서히 그녀를 변화시킨다. 펜들턴 언덕을 산책하다 그 아저씨의 개를 보고 따라가니 다리를 다친 펜들턴 씨가 누워있었다. 의사에게 연락을 하고 병문안도 간다. 퉁명스럽던 펜들턴 씨도 서서히 변하고 폴리애나는 이모와 펜들턴 씨가 오래전 연인일거 라고 오해하고 칠턴 선생이 주치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기치않게 펜들턴 씨가 폴리애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한다. 이모는 아니고. 그리고 밝혀지는 반전 이야기에 놀라는 한편 빙그레 웃음도 짓게 된다.
그렇게 폴리애나의 생활이 안정되어갈 무렵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다. 그래도 기뻐하기 놀이를 즐기던 폴리애나는 자신의 상황을 안 후 낙담하는데 그 소문이 퍼지고 마을 사람들은 폴리애나를 찾아오지만 폴리애나의 안정을 위해 이모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아는 그 놀이를 이모도 낸시를 통해 알게된다. 그리고…
어릴 때는 작은 일에도 잘 웃었는데, 요즘엔 애들이 깔깔거리는데 나는 공감하지 못할 때 내가 나이를 먹는구나 싶다. 처음 읽을 때는 앤의 아류작인듯 그렇게 기쁘지 않은데 너무 기뻐하는게 아닌가 싶어 유치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한 느낌이었는데 읽을수록 폴리애나의 순수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머리 속으로는 나는 귀를 열고 있어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친 낙천주의자라는 사전의 정의가 조금 거슬리지만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믿기에 나도 좀 더 마음을 열어야겠구나 싶다. 폴리애나, 고맙다.
스노 부인은 지금껏 사십 년을 살면서 그중 십오 년을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바라기만 하느라 있는 그대로 삶을 즐긴 시간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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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애나, 집이란 여인의 손길과 마음이 있는 곳이야. 아니면 아이의 존재가 깃든 곳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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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빠가 유난히 속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빠는 그런 구절이 몇 개나 있나 세어 봤어요. 자그만치 팔백 개나 되더라구요. 그래서 아빠가 그런 구절들을 ‘기쁨의 말씀’이라고 부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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