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이 임박해 잠에서

연령 12~20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1999년 2월 9일 | 정가 15,000원

출근 시간이 임박해 잠에서 깨어나면 렌즈를 끼지 못하고 지하철을 탈 때가 많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노르스름한 무언가에 코를 박고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아무리 집중해서 노려 보아도 나는 그 노란 것의 윤곽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혼자 공상하기를, 나처럼 바빠서 아침을 먹지 못하고 집을 나선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한 조각의 치즈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겠거니 했다. 얼마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치즈 한 조각의 공식적인 이름은 <모모>였다.

회사에 도착한 나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는 동시에 커피물을 끓이고, 사무실의 창문을 연다. 밤새 도착한 메일을 확인하는 동시에 신발을 갈아 신으며 가벼운 맨손 체조를 한다. 난 늘 이런 식이었다. 시간이 부족해. 난 언제나 그런 무의식 속에서 아침 태양을 맞았던 거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저 습관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단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허기져서 조금 처량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남들처럼 두 손에 치즈 한 조각을 들고 지하철을 타게 되었다.

모모. 이 아이는 시간이라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난 그 대목의 책장을 쉬 넘길 수 없었다. 누군가 ‘시간이 많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그 사람이 게으르고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왔던 터였다.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도 모자랄 판에, 시간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은 필시 뒤떨어진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모모가 시간을 소비하는 방법은 조금 색달랐다. 그 아이는, 귀를 열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데 자신의 시간을 사용했다. 늘 바쁜 척 하던 나는 내 앞에 갑자가 나타난 어린 현자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시간을 저축하라는 꾐에 빠져 순간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급히 서두르게 된 모모의 친구들, 그렇게 사람들이 아껴 놓은 ‘죽은’ 시간을 음용하며 냉기를 뿜어내는 회색 신사들. 우리는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모모가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 내는지 이미 다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치즈는 오랜 시간을 두고 맛을 음미해야 한다. 말하자면 ‘모모’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어린 현자가 그 자신도 의도하지 않게 독자에게 전해 주는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있다.

나는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매일 조금씩 이 치즈를 섭취했다. 치즈가 다 떨어지자 내게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단 1분 동안만이라도 나의 근황을 전하며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무엇보다 아침에 출근해서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5분 정도 쉴 수 있었다. 나는 이 작은 변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아니,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해 준 모모에게 고마웠다. 나는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모모의 친구들처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혹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잊는 데 나의 시간을 사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모>는 정말이지 영양이 풍부한 치즈였다. 얼마나 든든한 아침 식사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니, 굳이 <모모>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타인과 시간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깨닫게 해줄 만한 것이라면 그것이 치즈든 사과든, 우유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특히, 사람들의 시간을 도둑질 할 요량으로 회색 남자가 하던 말("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과 비슷한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허기가 지는 사람들에게 이 치즈를 꼭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