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뿌뿌를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사실 반성을 많이 했답니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 나이나 그 시기에 해야될 만한 것에 아이를 맞추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내 사랑 뿌뿌에서도 어렸을때부터 가지고 있던 담요를
한시도 놓기 싫어하는 아이가 나옵니다.
오웬은 어딜가든 무슨일을 할 때든 꼭 이 담요 뿌뿌를 가지고 다니지요.
정말 이름도 이쁘지 않나요?
자신이 사랑하는 담요의 이름이 뿌뿌라니…
원작도 읽어 봤는데 이렇게 이쁜 이름으로 지어주신 비룡소의 재치도 느꼈답니다.
오웬이 학교에 갈 시기가 되자 부모는 이 담요를 그만 가지고 다니게 할 생각으로
옆집 아줌마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전해 듣지요.
요술 담요가 와서 뿌뿌를 데려가고 새 담요를 줄거라거나
뿌뿌를 식초에 담궈서 이상한 냄새가 나게 한다거나
이제는 더 이상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거나..
그러나 그 모든 방법이 오웬에게는 통하지 않지요.
오웬에게 뿌뿌는 담요 이상의 것이었으니까요.
바로 모든 것을 자신과 같이 하는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요..
그래서 오웬의 엄마는 이 뿌뿌를 자르고 박고 해서 멋진 손수건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오웬이 항상 뿌뿌를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말이죠..
학교에 가는 시기가 되면 아이의 여러 면에 신경이 쓰이지요.
저도 올 해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겪었습니다.
밥을 먹는 습관이라던가 글씨 모양이라던가..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입장이 아닌 엄마의 입장에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바꾸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나 반성이 됩니다.
오웬의 엄마가 뿌뿌를 이해하고 오웬이 뿌뿌와 함께 다닐 수 있도록 한
지혜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것들을
지금도 제가 이해를 못하고 빼앗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작은 동화 한 편이지만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네요.
우리 딸에게 뿌뿌와 같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애기 때 처음으로 사주신 곰인형이라네요.
많이 빨아서 너덜너덜해져도 꼭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네요.
피아노 위에 놓여있는 곰인형 다시 깨끗하게 빨아서
아이의 침대 옆에 놓아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아이의 소중한 감정도 같이 지켜주기로 약속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