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책은 얕은 지식이나 교훈보다는 풍부한 상상력, 즐거움, 깊은 감동 그리고 아이들이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깊은 지혜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고릴라’는 아이들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그림책이다. 항상 일에 쫓겨 ‘내일 얘기하자’고 하는 아빠의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인 그림과 어울려 현실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진짜 고릴라를 보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사 온 고릴라 인형은 실망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그 날 밤 고릴라 인형은 진짜 고릴라로 변하고(그 모습을 보고 놀라는 여자 인형의 모습이 재미있다), 고릴라와 함께 동물원으로 영화관으로 즐겁게 돌아다닌다.
앤터니 브라운은 그림을 상당히 세밀하게 그렸다. 고릴라의 털 하나하나, 오랑우탄과 침팬지의 주름 하나하나를 사진보다 더 사진같이 그려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잘 잡아내고 있다. 신문을 읽는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 창백해서 접근하기조차 힘들어 보이는가 하면, 아빠에게 다가갈 수 없는 한나의 외로움을 뒷모습과 주변의 어둠과 넓은 공간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고릴라 인형을 선물로 받은 한나는 울음을 잔뜩 머금었으며, 동물원에서 만난 오랑우탄과 침팬지의 눈은 너무나 슬퍼 보이고, 아침에 고릴라 인형을 보고 미소 짓는 한나의 표정은 아주 행복해 보인다.
이 그림책의 또 다른 재미라면 곳곳에 숨어 있는 수많은 고릴라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나와 손잡고 걸어가는 고릴라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의 아빠의 모습이 꼭 닮았다. 늘 고릴라의 그림만 나오다 아빠가 한나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에는 아빠의 그림이 등장한다. 아마도 한나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고릴라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고릴라를 보러 가는 것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