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옷걸이에 옷 걸어 놓지마~”
뜬금없는 아이의 말에 의아해 하니 자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 깜짝 놀랐단다. 설핏 누군가 자기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아서 이불 뒤집어 쓰고 잤는데 아침에 보니 제 코트가 걸려 있더란다. 알았다는 말과 함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텔레비전에서 한참 인기있던 ‘전설의 고향’을 보곤 ‘내 다리 내놔’하는 말이 몇 년을 두고 식은땀 흘리며 꿈에 나타나 잠못들던 그 때를 말이다. 좁은 방에서 가족들이 함께 자면서 혹시나 옆에 있는 동생이 숨을 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에 손을 살며시 잡고 자기도 했다. 그랬던 내 모습이 아이에게서 보이니 어찌 비난의 말을 할 수가 있으랴.
색동의 테두리가 둘러쳐져 있는 표지를 보며 베라 윌리암스의 ‘엄마의 의자’를 떠올렸다. 각 장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었는데 이것도 혹시 하는 생각에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았다. 앨범에 사진을 꽂아 놓듯 다양한 색상 가운데 빌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앤터니 브라운 특유의 미소가 아이의 얼굴에 살짝 묻어있다. 조금은 구부정하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모습이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첫장에 등장하는 빌리의 모습. 표지의 모습과 비교해 많이 움츠러든 모습이다. 같은 자세임에도 회색을 가득 차 있다. 키마저도 작아 보일 정도다. 걱정이 빌리는 눌러 작게 만든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일도 아닌 일로 빌리는 걱정을 한다. 모자로, 신발로, 구름으로, 비로, 새로 모든게 걱정이다. 빌리를 둘러싼 방의 벽지마저 빌리의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엄마, 아빠는 단지 빌리의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뿐이라며 빌리를 도와주려하지만 여전히 빌리에겐 걱정거리 투성이다. 할머니 집에서 자게 된 빌리는 결국 할머니에게 마음을 털어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빌리가 바보라서 그런 상상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시며 빌리의 걱정을 들어줄 걱정 인형을 주신다. 빌리는 걱정이 생길 때마다 걱정 인형에게 온갖 걱정을 모두 털어 놓고 곤히 잠을 잔다. 빌리의 편안한 모습과 풀을 붙인 듯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뜻밖에 찾아온 새로운 걱정거리. 그것은 자신이 겪어 보았기에 자신이 털어놓은 걱정거리를 떠안고 있을 걱정인형이 다시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빌리는 걱정 인형을 위해 특별한 것을 만들어낸다. 걱정인형을 위한 걱정인형을 만든 것이다. 그날 밤부터 빌리와 빌리의 걱정인형들은 모두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테두리의 색깔을 따라 빌리의 얼굴을 보며 빌리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역시 대충정한 색상은 아니었다. 걱정에 싸인 빌리와 어두운 색상의 배경은 빌리의 감정을 따라가도록 도와 주었다. 걱정을 덜어낸 빌리의 화사함이 절로 마음을 가볍게 한다.
기쁨을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했다. 자신의 걱정을 나누고 편안해진 나만을 바라보는 빌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배려하는 빌리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아이의 마음을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아이의 마음을 눈높이로 읽어주고 따스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어떤 걱정인형을 주어야할지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