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 모모 >를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에 다닐 때였다. 우리 가족은 삼촌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사는 대식구였다. 그 때 대학생이던 삼촌 방에는 내가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아서 가끔 들어가서 구경하곤 했었다. 삼촌의 책상 위에 있던 까만색 가느다란 펜도 아주 좋아보였고 책이 가득한 책장도 내 호기심을 끌기 충분했다. 제목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를 내용의 책들이 대부분이였겠지만 유독 < 모모 >가 기억이 났었다. 아마 제목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책을 꺼내서 표지를 보니 웬 아이의 뒷모습이 있고 아래에 작은 거북이가 있어서 동화책을 대학생이 읽나 생각했었다. 그래도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었을 때 삼촌 집에 놀러 가서 다시 < 모모 >를 봤다. 그 때 삼촌에게 빌려 달라고 해서 읽었다. 어떤 느낌이 남아있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좀 어렵게 느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회색 인간들 때문에 무서워했고…
어른이 돼서 다시 이 책을 읽으니 그 때 생각이 먼저 난다. 어른이 돼서 읽은 < 모모 >는 중학교에 다니던 때보다 더 깊이, 오래 마음에 와 닿는다. 회색 인간들처럼 나도 정신없이 바쁘게, 여유를 잃어가면서 살고 있는 어른이 되어서일까? 그렇다면 그건 참 쓸쓸한 일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갖고 있는 책이라서 생활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여유를 잃어가고 초조해질 때 꺼내서 읽게 된다.
가장 신기한 건 거북이 카시오페아와 호라 박사가 나오는 부분이다. 인간 세계와 동떨어진 곳에 사는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삶에 깊이 연관이 있는 이들은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인 존재들이다. 시간의 꽃도 신기하고 호라 박사의 모습도 정말 특이하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같다가 젊은이 같다가…도대체 시간의 구애됨이 없는 존재다.
회색 신사들이 두려워하는 모모의 존재도 특별하다. 모든 사람의 시간을 뺏고 위협하는 그들이지만 모모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모모와 카시오페아를 추격해 오는 부분은 언제 읽어도(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긴장감이 팽팽해져서 읽게 된다. 결국 그들은 모모와 카시오페아를 잡을 수 없었지만 위협적이였기에 마음을 졸이면서 읽게 된다.
작가가 오래 전에 쓴 책인데 지금 우리 현실과 비슷한 점이 여기 저기서 보여서 우울하다. 작가가 상상한대로 우리가 차갑게, 앞만 보고 사랑과 정 같은 것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기계화와 자동화가 우리 삶의 시간을 벌어주지만 그 남은 시간에 우리는 무얼 하고 있을까? 꼭 뭘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휴식이 없으면, 놀이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재미있게, 신나게 인생을 즐겨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만 가르치지말고 정말 ‘노는 법’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것은 이미 갖고 태어나는 것인데 우리 몸과 정신이 잊어가는 것 같다. 인생을 즐기자.
나도 내 안에 회색 인간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뭐가 그렇게 바쁘고 급한지 종종거리고 조금만 차가 막혀도, 신호에 걸려도 참지 못한다. 하나도 안 바쁘면서 왜 그렇게 여유가 없어지는 걸까? 차갑게 식은 이기적인 인간이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따뜻한 인간이고 싶다. 나와 내 주변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뭔가 큰 인물이 되고자 하지 말고 내가 아는 사람들 마음 다치지 않게 배려하고 또 나 자신을 잊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고 싶다. 소박하고 행복을 가슴 뻐근하게 느끼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