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가 창문에서 슥

연령 7~9세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3년 12월 16일 | 정가 8,500원

산타 할아버지가 창문에서 슥 나오는 그림이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뜻밖의 수확이다. 글자가 빽빽하게 많아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이 읽기에는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이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순한 교훈만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여성을 차별하는 시선이나 물질만능주의 같은 시각을 비꼬고 있어서 초등학생이 보는 동화로 아주 좋을 것 같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였지만 부모님은 크리스마스에 꼭 선물을 주셨었다. 다른 친구들은 인형을 사달라고 조랐지만, 나는 그 당시 처음 나온 금색, 은색이 들어 간 색연필과 크레용을 사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걸로 얼마나 신나게 호닥질을 해댔을까. 그 때의 내 꿈은 화가였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잠이 안 오는 나를 억지로 방으로 밀어 넣어 자라고 한 엄마 덕분에 알게 됐다. 잠이 안 와서 말동말똥 누워있는데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길래 얼른 자는 척을 하면서 실눈을 뜨고 보니까 엄마가 내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나가는 것이다. 그 때의 실망감이란…우리집 굴뚝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 온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지금도 그 때 살던 집의 굴뚝이나 방이 또렷이 기억난다.

이 책의 산타 할아버지는 현대 문명을 적극 활용하는 앞서가는 시대에 발맞추는 산타다. 선물을 모두 전달하고 난 크리스마스 이브에 인형이 하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인형을 못 받은 아이들을 찾고 하나하나 찾아 간다. 어쩌면 하나같이 아이들은 부족함이 없이 넘칠 정도로 무언가를 그렇게 갖고 있는지..게다가 찾아간 여섯 명의 아이들 모두 인형의 임자가 아니였다. 남자 아이인 안드레아스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 아이의 비뚤어진 여성에 대한 인식에 화가 나서 그대로 나와 버린다.

작가는 환상적인 내용에 현실을 꼬집는 내용도 집어 넣어서 여성을 화초로, 눈요기감으로 전락시키는보이지 않는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의 산타 할아버지가 안드레아스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책의 전개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인형의 임자가 아닌 그 아이에게 주었을 테니까.

이 책은 끝부분으로 갈수록 더 진지해지고 흥미롭다. 행운 부인이 등장하는데 행운 부인은 우리들이 그렇게 바라는 바로 그 “행운”이다. 그런데 행운 부인의 태도가 참 재미있다. “사람들은 행운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싫어하거나 너무 일찍 찾아와 알아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서 두 경우 모두 기분이 상해 행운 부인은 자리를 뜬다고 한다. 행운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콕 집어서 말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했다. 바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기도 할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는 행운 부인에게도 도움을 얻지 못하고 직접 인형에게 물어 보고서야 주인을 찾는다. 바로 첫번째로 찾아갔던 여자 아이, 안토니아에게 십 년 뒤에 배달 될 인형 시모네타였다. 십 년 뒤에 배달될 계획이였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행운 부인이 말하듯이 행운은 오래 전부터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인형을 안토니아의 배게 밑에 넣어둔다. 안토니아는 십 년 뒤에야 받을 선물을 미리 받고 아주 좋아한다. 산타 할아버지는 인형의 손목에 카드를 써서 리본으로 묶었다. 카드 안에는 이렇게 써 있다.

“내가 시모네타예요. 행운이란 계획대로 오는 게 아니랍니다”

다소 묵직하지만 재미있다. 마지막이 깔끔하고 산뜻하다. 책의 표지처럼 엉뚱한 발상으로 이야기가 시작하지만 마무리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