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모건스턴의 통통 튀는 상상력이 담겨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책은 차분하고 잔잔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다. 지금까지 읽은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할머니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할머니의 과거를 잔잔하게 보여 주면서 자연스러운 감동을 독자에게 던져 준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만든 기쁨으로, 슬픔으로, 근심으로 만들어진 주름살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시작하는데 이 책의 제일 큰 매력은 문장이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화려한 꾸밈이나 비유는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다니고 공감을 만들어내는 문장 때문에 계속 다시 읽어야 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숨은 작가까지도 떠올리면서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내 미래를 보는 것 같고 현재 내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허트로 보게 되지 않는다. 늙음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은 추하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현명하게 늙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그 답을 이 책의 할머니를 통해서 어느 정도 찾았다. 할머니는 눈도 어둡고 기억력도 흐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두려움은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용감하게 혼자서 해나간다. 가끔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받으면 아무렇지 않게 다 좋다고 그럭저럭 지낸다고만 말한다. 외로움이 너무 쌓이게 되고 말을 하지 않아서 쌓인 고독이 터지면 잠이 안 오는 게 아닐까? 나이들면 왜 잠이 오지 않을까?
이 책에는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아주 많다. 할머니는 전쟁 중에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었는데 그 때 경험을 이렇게 표현한다.
“…세상의 사탕이란 사탕을 다 모아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생기는 쓴 맛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남편이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했다가 다시 잡혀가는 아픔을 겪지만 아이들도 남편도 다시 만나 살 수 있었는데 그 때의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 놓는다.
“힘든 시절을 견딜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깜짝 선물과도 같은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구절은 맨 나중에 나온다. 손자들이 할머니한테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의 할머니의 대답이다.
“아니, 내 몫의 젊음을 살았으니 이젠 늙을 차례야. 내 몫의 케이크를 다 먹어서 나는 배가 불러”
할머니의 멋진 노년을 배우고 싶다.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말자. 두려워할 수록 그것은 커진다.똑바로 내 앞을 직시하고 열심히 살아갈 일이다.
부모님이 나이 드시는 게 쓸쓸하고 마음 아프지만 나 또한 머지 않았다. 걱정을 하느라 내 앞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누려야겠다. 헤어질 때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드시는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어진다. 이번 주말에 엄마에게 갔다와야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양갱을 사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