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스핑키처럼…..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제 여덟 살 된 큰 아이가 ‘부루퉁한’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뭐라 말해줄까 망설이고 있는데 책 표지 그림에 스핑키가 잔뜩 인상을 쓰고 수레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음 이게 부루퉁한 표정이야.’하고 말했다.
책을 읽으면서 스핑키의 얼굴을 살펴보니 정말 끝까지 부루퉁한 표정 그대로 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단단히 화가난 스핑키는 누나가 와서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형이 미안하다며 점심 먹으로 가자고 하지만 대답도 하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가버린다.
엄마가 다가와 뽀뽀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 스핑키는 자기감정을 예민하다고 여기며 제풀에 지치게 그냥 놔두라는 아빠를 보고는 무슨 아빠가 저러나 싶어서 더 화가 난다.
누구나 스핑키처럼 작은 일로 시작해서 마음이 단단히 토라지는 경험 한두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 무슨 이유 때문이지 그 사건은 생각나지 않지만 마음이 토라져 다시는 식구들에게 마음을 터놓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른다. 작은 일로 화가 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화가 난 그 기분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 더 속상하고, 식구들에게 느끼는 배신감으로 마음을 굳게 닫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다시 기분이 풀렸다가도 또 그걸 금방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 누군가 먼저 말 건네주길 한 참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스핑키의 부모님과 가족들은 참 오랫동안 끈기 있게 스핑키의 마음을 설득하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러지 않았으니……. 한편 스핑키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스핑키는 건 부모님이 자기 기분을 억지로 바꾸기 위해 이런저런 제안을 한다거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형과 누나가 와서 말을 걸고, 지금 자기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쓰는 것 같은 게 반갑지 않았을 테다. 그냥 지금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느껴주는 일을 제일 원했을 테지. 그러면서 옆에서 기다려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스핑키는 참 행복한 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든다. 자기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고, 그걸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엄마, 그리고 처음에는 스핑키의 행동을 보고 너무 하다 싶어 썩 마음이 내키지 않은 듯 보였지만, 아이의 감정을 내몰라라 하지 않는 아빠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싶다. 더구나 할머니까지 스핑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오셨으니 스핑키는 참 행복하겠다.
스핑키가 느끼는 감정이 너무 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나는 스핑키에게 너무나 공감이 갔다. 단단히 화가 나 정말 다시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테야, 웃지도 않고, 내 마음을 털어 놓지도 않을거야 하고 마음 먹었을 때는 모든 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아 있는데 다른 식구들이 웃고 있기라도 하면, 그것도 서운하고,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작은 일에도 기분이 상한다. 그리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 마음에 풀렸다가도 자존심 때문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지 못하는 것도 비슷하다.
다만 스핑키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을 확인했다면 나는 어릴 때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는 것……. 그냥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리게 되거나, 다른 일에 묻혀 그 감정을 더 이상 키우지 않게 되었지,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딸이 기분이 상해 있으니 부모님도 신경은 쓰셨지만 형제들이 많다보니 세심한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그냥 모른 체 했던 게 미안했는지 스핑키는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아침상을 차리고 어릿광대 모습을 하고는 식구들을 놀라게 한다. 아……. 도무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부루퉁한 얼굴에 이런 배려가 숨어 있었으니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스핑키가 느끼는 감정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되는 그런 것이라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랑 비슷하구나’ 하는 공감대와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스핑키처럼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을 때 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별거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 하거나, 곧 괜찮아질 거라고 성의 없이 이야기 하지 않고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감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아이가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이건 너무 심한 건 아닌가? 라고 여겨질 때 이 책의 주인공 부루퉁한 스핑키를 떠올리며 아이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