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만들어 주는 상상의 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남편이 낙타의 등장과 낙타가 하는 말을 보고는 “아빠하고 좀 비슷하네.” 하고 말한다. 이제 일곱 살이 된 큰 아이는 “그래 아빠하고 비슷하다.” 하고 말하고……. 이 책 파란의자에는 우리집 아이들과 아빠의 모습이 담겨 있어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은 의자 하나만 가지고도 온갖 상상을 하면서 논다. 우리집에는 아이들이 쓰는 둥근 탁자랑 작은 의자가 여러개 있는데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정말 온갖 놀이를 한다. 의자를 여러개 이어서 거기를 침대라하며 눕기도 하고, 그 의자로 섬이랑 울타리도 만들고, 계산대, 식탁까지 온갖 것들을 만들어 낸다. 하루는 둘이서 엄마놀이를 하다가 의자를 거꾸로 세우고 작은 아이가 그 안에 들어가 보행기를 탔다며 그 의자를 밀고 다니는 흉내를 내길래……. 와 정말 의자가지고 못하는 게 없구나 생각하고 감탄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 아빠이다. 남편은 위험한 걸 미리 막아야 한다는 안전주의자라 의자위에 둘이 올라서서 밑에 괴물이 있다며 좀 구해달라는 시늉을 한다거나 의자를 거꾸로 세워 놓는다거나 하면 위험하다고 그걸 못하게 하는 날이 많다. “의자는 앉으라고 있는 거야. 바로 안 세워 놓으면 다시 아빠 사무실에 갖다 놓을테다.” 하고 협박을 하는 날이 많으니 아이들은 어떨 때 “지금은 아빠가 없으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 ‘파란 의자’에 나오는 두 친구가 의자를 가지고 온갖 상상을 하는 것은 우리집 남매와 너무도 똑같고, 상상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낙타의 고정관념은 아빠와 비슷하게 닮아 있으니 처음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물론 아빠는 아이의 상상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다칠까봐, 넘어질까봐, 부딪힐까봐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어른들은 언제나 이런저런 핑계를 많이 대고……. 고정관념을 쉽게 허물지 못하니 낙타는 어른들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막길을 걷고 있는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모습도 참 재미가 있다. 조금 통통한 듯한 에스카르빌과 깡마른 샤부도는 성격도 아주 다르다. 샤부도는 깡마른 몸처럼 뭐든지 정확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사막에 누구 하나 얼씬도 안한다는 에스카르빌의 말을 삭막하다고 바꾸어 말하고, 의자네 하고 말한 에스카르빌의 말을 받아 파란 의자라고 또 덧붙여 말한다. 이렇게 정확한 걸 좋아하는 샤부도이지만 의자를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는 에스카르빌과 죽이 착착 잘 맞는다.
의자를 옆으로 눕혀 앞뒤에 타고 앉아 온갖 자동차를 비롯해 비행기, 헬리콥터를 타는 것처럼 노는 에스카르빌과 샤부도의 모습은 어느 집에서나 한번쯤은 봤을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그걸 보고 뭐하는 짓이냐고 나무란다면 다음부터는 의자를 가지고 온갖 상상을 하는 일은 점점 줄어 들 것이다. 그러면 의자를 배라 여기고 그 위에 올라타는 모험 같은 건 하지 않을 테고, 의자를 계산대로 생각하고 가게 놀이를 하는 즐거움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의자위에서 공중 곡예를 하듯 온갖 묘기까지 부리는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를 인상을 쓰고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낙타가 “아니, 머리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뭐가 서커스야? 서커스는!” “의자는 말이야, 그 위에 앉으라고 있는 거야.” 하면서 보란 듯이 의자위에 떡 하니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놀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다.
에스카르빌과 사부도라고 해서 의자가 앉으라고 있는 거를 모르고 있을까? 낙타의 가르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상상력이라고는 통 없는 낙타를 비웃으며 두 친구는 또 다른 상상의 세계를 찾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