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처음과 끝, 그 안에서 겪는 신비로운 이야기
‘죽음과 성장의 의미,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신비롭게 풀어낸 그림책’이라는 표지 덧글을 보고는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 아이한테는 너무 어렵겠다 싶어 제쳐두었는데 아이가 혼자서 이 책을 읽고는 재미있다고 한다. 내용도 제법 길고, 주제가 단순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도 산만한 듯해서 아이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재미있다며 엄마가 다시 읽어 달라고 한다. 그래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아이가 무엇을 재미있어 하고, 무엇에 빠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죽음과 성장,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라는 표짓말이 꼭 어렵고 딱딱하며, 무겁고 재미없는 이야기라는 뜻은 아닌데 내가 선입관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는 나무에서 아이가 만나는 모험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는 것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언제 끝이 날까? 또 무슨 모험과 신비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나무로 둘러싸인 집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 이폴렌이 살고 있다. 이폴렌은 나무에 살고 있는 작은 애벌레 요정같이 보이는데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이들의 상상속에 사는 어떤 존재이겠지. 그런데 어느날 아빠와 이폴렌이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무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수천개의 작은 빛들이 나무에 메달려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할머니의 죽음을 슬퍼한 나무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할머니를 너무 사랑했던 이폴렌의 마음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슬퍼하던 이플렌의 몸 전체가 눈물로 변해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그 때부터 이플렌은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 갖가지 모험을 겪게 된다.
이 신비한 세계는 아름답과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갖가지 위험과 공포가 기다리고 있는 모험의 세계였다. 이폴렌은 길 잃은 아이들을 잡아먹는 귀신 오르틱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오르틱을 보는 순간 너무 무서워서 순식간에 돌로 변해 버린다. 갑자기 돌로 변해 버린다는 설정이 어른인 나한테는 설득력이 없어 크게 공감하지 못하겠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은 가보다. 신비로운 일곱 개의 계절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이폴렌과 이 세상 나무들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음악안개 속에서 이폴렌의 할머니, 이폴렌의 할머니의 할머니,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의 목소리까지 듣게 되는 모습이 마냥 신기한가보다.
뒤이어 이폴렌은 나무 뿌리 속에 있는 여러개의 통로 속으로 들어가 한참 헤메이다가 문짝 세 개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 가운데 하나의 문을 열어보는데 오히려 더 크고 깊은 구멍 속으로 빠지고 만다. 이렇게 이플렌은 알수 없는 구멍과 문, 거울속을 오가면서 갖가지 모험을 하게 된다. 여기가 집으로 가는 길인가 싶어 문을 열면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진짜 거울을 찾은 줄 알고 거울 안으로 들어가면 또 사방이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되니 도대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해지고, 아이들은 자기가 모험을 겪는 것처럼 마음 졸이게 된다.
그런데 어두운 길을 밝혀 주는 작은 등불의 도움으로 진짜 거울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플렌은 자기 집 나무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고, 계단을 내려가 자기 집 나무를 향해 간다. 작은 등불까지 비춰주는 진짜 거울을 찾아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은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겠지.
여기서 이폴렌은 나무의 끝을 보게 되고, 자기 집 나무 말고도 다른 수만 그루의 나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끝없이 이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무에는 끝이 있었고, 자기가 살고 있는 나무 말고도 세상에는 수만 그루의 다른 나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폴렌.
갖가지 위험과 모험을 겪으면서 이플렌이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런 모험을 겪으면서 이폴렌은 성장의 한 단계를 밟게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에 만났던 오르틱 귀신을 다시 만나지만 이폴렌은 씩씩하게 소리친다. “나도 너 따윈 무섭지 않아!” 처음에는 오르틱을 보고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돌로 변해 버렸던 이폴렌이 이렇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폴렌의 당당함에 금세 기가 죽어 시든 배추처럼 늘어진 오르틱은 스르르 녹아 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이폴렌은 자기의 새이름을 하나 생각해냈다. ‘발견쟁이 이폴렌!’ 비로소 이폴렌도 자기만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아빠는 ‘비를 피하는 큰 잎사귀’, 할머니는 ‘이야기를 지어 내는 가을 기슭’, 엄마는 ‘별을 헤는 산봉우리’이런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 슬픔을 이겨내면서 이폴렌도 이제 그만큼 성장했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음악 안개 소리를 들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나무의 처음을 알게 되고, 갖가지 모험을 겪으면서 나무의 끝을 알게 되고, 커다란 진주를 통해 나무의 씨앗을 마음에 품고 온 이플렌. 세상의 처음과 끝. 그리고 그 길에 펼쳐진 기나긴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의 의미를 이제 일곱 살을 지난 딸아이가 제대로 알고 재미있어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폴렌이 여러 가지 모험을 겪으면서 그 위험에 맞서 이겨내고, 씩씩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만족감을 느끼고 자기도 그렇게 씩씩하게 세상을 헤쳐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겠지. 신비롭게 펼쳐진 모험의 세계를 여러 가지 문과 구멍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주는 그림에 눈길이 가는 이 책 ‘끝없는 나무의’ 발견쟁이 이폴렌처럼 아이도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에 꿋꿋하고 씩씩하게 맞서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