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학교 근처에 과학기기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한번은 그곳으로 견학을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긴 막대를 부니까 밑에 유리로 된 병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지금이야 모두 기계로 만들겠지만 그 때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도대체 모양이 어떻게 다르게 나오는 것일까, 어느 것은 비이커가 되고 어느 것은 시험관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다. 아니 그 후로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알베르트의 직업이 유리장이라니 문득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을 뿐 그것을 지금까지 잊고 지낸 것이다.
알베르트는 진정한 장인이다. 유리 그릇을 더 많이 만들거나 사람들이 찾을 만한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팔리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그런 그릇을 만들고자 노력하니 말이다. 그러니 소피아가 자신보다 유리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할 만도 하지. 알베르트는 부인에게 지금 만드는 훌륭한 그릇을 완성하면 가정에 충실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소피아는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그릇이 완성되면 또 다른, 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려고 할 테니까. 인간의 욕심 내지 욕망이란 그렇다.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던 것도 막상 이루어지고 나면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멀리 있는 것을 다시 갈망한다. 그렇게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것에서 초월한 사람을 우리는 특별하게 취급한다. 도인이라느니 성자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소원을 이뤄줄테니 딱 한 가지만 말하라면 바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빌겠다고… 그러면 얼마나 환상적인가 말이다.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고 골치 아프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그러다 다시 드는 생각 하나. 만약 내게 모든 것이 주어진다면 그러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목표로 살게 될까. 얼마전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단 며칠만이라도 갖는다면 그동안 밀렸던 일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고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 때가 마침 방학이었기에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도 혼자 있을 기회가 생겼다. 남편은 아침에 일찍 나가니 그야말로 낮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웬걸… 아무런 의욕도 없고 재미도 없고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언제 다시 그런 올지 모르는 아주 귀한 기회였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가치있는 것은 모든 여건이 주어질 때가 아니라 그 여건을 만들어갈 때라고… 아마 성주의 아내가 바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원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물론 별 생각 안했을 때는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그러다 위에 언급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주가 찾아오지 못했을 때 아내가 기뻐했겠지. 그 소원을 적어도 이듬해까지는 간직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성주의 아내 뿐만 아니라 성주도 불쌍하다. 성주의 아내는 자기에게서 소원의 가치가 사라져서 슬프다는 것을 인지하기라도 하지만 성주는 그 사실 조차 알아채지 못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중에 플락사로 인해 성주가 전에는 절대로 하지 않았던 고맙다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나중에 하나의 고리로 완성될 때 느끼는 기분은 뭐랄까 그때까지 머릿속에서 따로 놀던 조각들이 아귀가 딱 맞아서 하나의 온전한 모습이 형체를 드러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잃어버린 기억의 강을 건너면서 성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는다고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의 큰 걱정거리에서 해방시킨다. 실은 그토록 학대받은 아이들 마음의 상처를 나중에 어떻게 치유할까 한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면서 비록 기억속에서는 사라졌지만 무의식에 남아 있어 가끔 악몽을 꾸거나 괜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며 그 기억에서, 그리고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작가의 치밀한 작전이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