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큼의 위상을 드높일 줄 알았던 도도.
일개 애완견에 불과 했음을 알기 전까지의 도도는 주인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는 표현이 적격일 듯……, 자기가 개라는 사실을 잊은듯 주인내외를 비아냥거리고, 그러면서도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융숭하게 받아가면서……
주변에 흔하게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견공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애정과시는 지속적이기도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서 도도에게 행했던것 같은 불행을 야기 시키기도 한다. 어떤 유행쯤과 같이 물갈이를 하는 경우를 보면서 사모님의 행동이 그러한 것 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도도 이전의 버림을 받았던 미미, 파파, 라라의 존재의미는 어떤 설명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한낱 소유물로서의 동물 그리고 그것들의 소멸감….. 그러한 그녀가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어떤 행동으로 대할지는 불 보듯 뻔하니까.
현실에 안주하는 삶 대신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깨닫게 되는 도도는 재선택된 삶을 버리고 스스로의 자율적 삶을 찾아 탈출을 감행한다. 어쩌면 배신의 경험으로 인해 다시 찾은 천금같은 기회를 누리고 이어가기 위해 더 밀착되고 눈치보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할 법도 싶은데….., 깨달음은 참으로 용감해지고 현명해지는 것인가보다.
모험은 말 그대로 도도에게 가시밭길과 같았다. 세상물정 모르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를 찾는다는 취지를 살리지도 못하고, 사람도 도도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늘상 보호받고 수동적이던 이들이 사회적인 부적응를 하여 낙오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우여곡절 끝에 첫 선택한 상자 할머니. 살갑지는 않더라도 인간미 느껴지는 애정에 안도했었는데, 그것은 불완전한 정착이었다. 사고로 인해 동물보호소로 가게 되고, 그곳의 여러 상황과 혼란스러움을 겪던 중에 휘청거리의 뭉치와의 재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원한 이별을 앞둔 뭉치가 도도에게 희망을 각인시킨다. ‘ 어차피 더불어 살아야 한다면 당당한 동반자의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존중 받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그 확실한 목표에 도도는 보청견으로서 초롱이의 삶을 개척하고 즐기며, 수진씨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의미를 부여 받게된다.
제2의 삶을 알차게 시작한 도도 아니 초롱이가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주위에 맹인 안내견, 탐지견, 인명구조견….등 사람보다 훨 나은 견공들을 볼 때,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었든 훈련에 의한 것이었든간에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왠지 뿌듯해 진다. 우리 입장에서는 알 수 없겠지만 그들도 그 스스로의 역할에 만족하고 즐기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든다. 과연 그들의 이와같은 자랑스런 도도함을 한 때는 주인이었던 이들이 어떻게 볼지도 궁금스럽다. 또다른 헛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을까? 반성하며 다시금 우리가 사랑을 주고 있는 것들에게 어떤 주인으로, 주변인, 동지로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을 취함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