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구석에 걸려있는 두루마리 휴지가 사진기의 필름처럼 보인 적이 있나요? 혹은 가스레인지의 동그랗게 불타는 화구가 불길을 뚫는 소방차의 바퀴처럼 보인적은 없나요?
동그라미 하나를 그냥 동그라미로만 보지 않고, 공, 안경, 바퀴..등등 다양한 형태를 연상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대상을 두고 형태의 공통점을 갖는 다른 대상을 연상하는 것, 이것을 형태발상이라고 합니다.
유아기 때에는 사고가 유연하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발상이 가능한 시기랍니다. 다양한 발상법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아이라면 아이의 창의력은 쑥쑥 자라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아이들은 참 운이 좋습니다. 고미타로라는 멋진 작가가 있으니까요.
간결한 그림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그의 작품을 보면 그는 다른 동화작가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답니다. 고미타로는 다양한 발상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 출신입니다.
도쿄에서 태어나 구와자와 디자인 연구소에서 공업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림책이 좋아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의 작품을 보면 그 신선한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재미에 늘 감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통통 튀기만 하는 줄 알았던 그의 작품 중 정말 눈물 나도록 감동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송아지의 봄>(비룡소. 2003)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앞서 말한 형태발상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물론 그의 작품답게 그림은 아주 간결하고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봄이 왔어요”라는 짤막한 글과 함께 눈처럼 하얀 송아지가 등장합니다. 눈처럼 하얀 송아지는 정말 하얀 눈밭으로 변신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눈이 녹아요”라는 글과 함께 송아지의 등에는 검은 얼룩무늬가 생깁니다. 송아지는 하얀 눈이 녹아내리고 봄의 기운이 담긴 대지가 된 것입니다. 이제 송아지의 등 위에서는 사계의 마법이 펼쳐집니다. 흙이 얼굴을 내밀고, 새싹이 돋고, 꽃이 핍니다. 싱그러운 풀도 자라고, 바람도 불고. 그렇게 계절은 변하고 변하여 어느 덧 눈 내리는 겨울이 됩니다.
광활한 자연이 거쳐 간 송아지의 등에는 다시 눈이 쌓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그러했듯이 눈이 녹습니다. 이제 또 다른 봄이 오고 송아지의 등에는 다시 검은 얼룩무늬가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답니다. 송아지에게 조그만 뿔이 뾰족 돋아났거든요. 마법 같은 사계가 펼쳐지고 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송아지는 한 해를 거뜬히 살아내고 멋지게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는 것으로 이 책은 마무리 됩니다.
저는 아직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송아지의 조그만 뿔을 보며 느꼈던 짜릿한 전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간결하고 깔끔한 그림에서 이렇게 거대한 자연의 섭리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일이죠. 이러한 마법이 가능하게 한 고미타로는 정말 우리 아이들을 위해 태어난 마법사인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으시다면 고미타로의 작품을 보여주세요. 아이디어가 필요한 어른들에게도 고미타로의 책을 권합니다. 누구에게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는 즐거운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