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표지의 이런 파자마를 입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사를 하기로 정해진 브루노네. 이사가기 싫어하는 마음은 모두 같구나 싶은게… 마치 이사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투정같은 이야기가 지리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더더군다나 이사를 하게 된 곳이 먼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5층짜리 건물에서 살다가 3층밖에 안되는, 그것도 브루노가 좋아하는 탐험할 곳도 없는 집에… 친구들도 없고, 철조망이 길게 이어진 바깥풍경엔 똑같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사람만이 보인다면 말이다. 이 아우비츠는 정말 정이 안가는 곳이다.
어떤 크라이막스를 찾는 나에게 이 이야기는 마치 9살 꼬마의 일상을 너무나 담담히 그려나가는 듯이 비춰졌다. 물론 읽다보니 분명 배경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이지만 전쟁이 일어났던 상흔이라든가, 전쟁의 참상, 고통, 아픔등과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군의 잔인함등 그런 것이 이런 전쟁을 다룬 소설에 빠지지 않는 양념같은 거라 생각했던 나는 오히려 이렇게 창 밖의 풍경이 전에 살던 베를린의 풍경보다 못하고, 있는 그대로를 9살의 눈으로 보는 브루노의 시선처럼, 친구하나 없이 누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심심하기까지 했다.
심심하기만 하던 브루노는 떡갈나무에 그네를 만들어 놀다 다치는 아우비츠에 온 이후 가장 크고 특별한 사건을 맞는다. 웨이터(전에는 의사였지만 지금은 웨이터)인 파벨씨의 간호로 치료를 했지만 왜 엄마는 자신이 치료해 줬다고 말해야 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느날 브루노가 싫어하는 중위 코틀러가 참석한 저녁식사 자리에 그만 파벨이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놓쳐버려 그만 중위의 무릎에 붉은 포도주를 쏟는다. 이 젊은 중위는 무자비하게 한테는 의사였고, 지금은 웨이터인 폴란드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브루노는 친절하게 타이어도 옮겨다 주고, 피가 흐르는 무릎도 닦아주고, 초록색 약도 발라줬던 그 착한 사람을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겨우 9살. 세상을 알기에 9살은 너무나 미숙하다. 이해 안 되는 구석도 너무나 많다.
아우비츠로 이사온 지도 여러달이 되고… 이제 어느정도 적응이 된 브루노는 탐험에 나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철조망을 따라 한 시간 남짓을 걷던 브루노는 처음엔 점같다가, 물방울 같다가, 사람의 형태를 한 한 소년과 만나게 된다. 창 밖을 통해서 봤던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는 소년이였다. 아직 이사와서 친구가 없는 브루노는 드디어 자기 또래의 아이를 만나게 된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만난 소년이 같은해, 같은 날,(1934년 4월 15일)에 태어난 것을 알고는 갑자기 행복한 기분이 든다. 외로운 아우비츠 생활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브루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친구를….
이제 이야기를 결말을 향해 치달아간다. 외로운 생활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베를린으로 가고 싶어하고, 아버지도 아이들이 있기에 아우비츠는 적당하지 않다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이제 베를린으로 가기로 한 이야기를 브루노는 비밀친구 쉬뮈엘에게 하러간다. 아이들은 브루노가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에 탐험을 할 계획을 세운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안의 세계에 들어가 쉬뮈엘의 아버지를 찾는 걸 도와 줄 계획을 세운 아이들은 이윽고 실행에 나선다.
브루노는 줄무늬 파자마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고… 파자마를 갈아입고는 철조망 안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럴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거의 마지막을 읽어가는 나는 너무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금방이라도 솟구쳐 떨어질 것처럼 잔뜩
담은 채 읽어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브루노는 주인공이잖아, 주인공을 죽이는 법이 어딨어?’
전쟁은 채 피지 못한 꽃들을 잔인하게 꺾어버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브루노와 쉬뮈엘의 우정은 그래서 더 빛날지 모르겠다.
“이제는 네가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쉬뮈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친구,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친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