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음직한 상상, 순간이동!
겉표지의 그림,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 하며. 꼭 만화책 같았던 책 ‘점퍼’였다. 다른 책보다 크기가 작아서 왠지 친근함을 갖게 해주었고, 그 내용 또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 만점의 책이었다. 반면에 여백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 때문에 읽기가 약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이 책은 정말 만화책 못지않게 재미있었다.
이 책이 다룬 내용은 바로 ‘순간이동’이다.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도망치려던 데이비드가 자신에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때부터 데이비드는 평범한 인간으로써의 삶을 포기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 때문에 발생하는 많은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공간을 ‘점프’하는 능력으로 은행 금고를 털어 많은 돈을 갖게 됨과 동시에 짝사랑하던 여자 친구(밀리)까지 사귀는 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위험하게 여긴 정부로부터 추격을 당하게 되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점프’를 이용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하고 밀리와 단둘이 사라지며 끝을 맺는다.
먼저 이 소설은 ‘순간이동’이라는 허구적 요소를 다룸과 동시에 데이비드, 즉 청소년 시기의 급격한 심리상태를 다룸으로써 더욱 재미를 더했다. 여자 친구 밀리와의 사랑과 어머니의 죽음을 통한 고뇌, 은행 강도가 되었다는 자책감 등등…….
또한 독자들에게,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상상해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누구든 현실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자기만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세계 곳곳엔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운 기인들이 살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현세에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다다르니, 왠지 오싹해지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영화 ‘엑스맨’처럼 일반인들이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돌연변이 취급하고 적대시하며 죽일 수도 있고, 그와 반대로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며 일반인들 위에 군림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또 일반인들과 능력자들 간의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학살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순간이동’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어 자기들만의 상상을 활짝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어쩌면 어렸을 적에 한번쯤은 꿈꿔보았음직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나감으로써, 현재의 자기 위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또 재조정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었다. 청소년들에게는 꼭 교양도서만이 아닌, 이런 신선한 내용의 자극제도 때때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라는 틀과 대학입시라는 벽에 갇혀 억눌려왔던 청소년들만의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 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도 딱 한 번만의 공간이동 능력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대학입시 때, 시험문제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로 공간이동 해서 시험지를 슬쩍 빼내오게 말이다. 흐흐, 이건 나 혼자만의 상상일 뿐이다. 만약 내 뜻대로 이뤄져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아야만 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점퍼1에 한껏 고무된 나는, 곧바로 ‘점퍼 2 – 그리핀 이야기’도 읽어보았다. 처음엔 점퍼2가 점퍼1의 연작 형태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점퍼2는 1편과는 많이 다른 내용의 소설이었다.
먼저 주인공부터가 달랐다. 2편의 주인공은 데이비드가 아닌 그리핀이다. 그리고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능력을 자각했다는 것부터가 1편과 다르다. 또한, 그리핀의 이야기는 데이비드처럼 가정폭력으로 인한 가출로 시작한 게 아니라, 특정 조직에 의해 부모님을 살해당해 어쩔 수 없이 도망치며 시작되었다. 어떤 단체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는 건 똑같지만, 데이비드는 정부 조직에게 위협을 받은 것에 반해 그리핀은 정체모를 단체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처럼 내용이 약간 다르긴 했지만, 점퍼2도 1편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2편은, 분량이 1편에 비해 적은 데 비해 상황전개가 빠른데다 주인공이 세계 곳곳으로 점프하며 다녔기 때문에 스케일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읽으면서 ‘1편의 주인공과 몇몇 요소들만 바꿔 썼다’라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1편의 밀리처럼 E.V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너무 많이 집어넣는 바람에 꼭 연애소설을 읽는 듯 했다. 그래서 SF소설만의 독특한 재미가 약간 빛을 잃은 것 같았다. 꼭 어린아이가 빛바랜 어른 옷을 헐렁하게 입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또 점퍼2는 내용 자체가 너무 어두웠다. 그리핀이 ‘점프’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또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무척 어두웠던 것이다.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생명존중 사상을 너무 쉽게 다룬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면서 말이다.
솔직히 점퍼2는 1편에 비해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만약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을 가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공상적 주제를, 정말 현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인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감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