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에 급호감을 갖고 책을 산 지도 1년 정도 된 것 같다. 집의 아이들이 마르고 닳도록 읽는 책 종류에는 아직 속하지 않았지만,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이 책을 참 좋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는 이 책을 훌렁훌렁 대충 읽었는데, 오늘 조금 꼼꼼히 읽어보았다.
궁궐의 기와지붕 위에만 올려지던 어처구니(흙으로 만든 조각물.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이들의 이름이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삼갑, 이귀박, 나토두란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단다.)들에게는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이 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로는 ‘어처구니’들과 ‘손’이라는 귀신이다.
하늘나라에서 말썽 많은 어처구니들을 하늘나라 임금님이 잡아 들이신다.
이구룡(입이 두개다. 이름에 뜻이 숨어 있네.) 거짓말로 하늘나라를 혼란스럽게 한 죄.
저팔계(힘이 장사다)술을 먹고 천도복숭아 나무를 뽑아 버린 죄
손행자(재주가 뛰어나다) 하늘나라 임금님과 똑같이 생긴 허수아비를 만들어 선녀들을 골탕 먹인 죄
사화상(물을 다스릴 줄 안다) 하늘나라 임금님이 아끼는 연못의 물고기를 죄다 죽인 죄
대당사부(나름 어처구니 중에 가장 현명하다) 사람들이 죽는 날을 똑같이 만들어 큰 말썽을 일으킨 죄
임금님은 이들에게 하늘끝에서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손’이라는 귀신을 잡아오면 죄를 모두 용서해 주시겠다고 이야기 한다.
처음에는 그냥 덤비다가 실패를 거듭했지만, 대당사부는 책을 보고는 그 방법을 알아내서 각자의 역할을 주어 손을 잡기로 맘 먹는다.
저팔계는 방패연과 청동그릇을 만들었고, 사화상은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웠고, 이구룡은 두 개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그 그릇안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다고 손을 꼬드겼다. 손행자에게는 (귀신을 쫓는다는)엄나무 구백아흔아홉자로 긴 밧줄을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들 자기 임무를 잘 완수했는데 손행자가 제 할일을 대충 하여 미션 완성을 못하는 바람에 다 잡은 손을 놓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청동그릇 안의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손이 너무 놀라운 모습에 뻗뻗하게 굳어 버리자 손행자가 밧줄을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서는 연에 묶어 하늘로 띄워 보냈는데, 정직하게 일하지 않은 손행자 때문에 밧줄이 투두둑 뜯어져 놓치고 만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작전 실패한 어처구니들을 잡아다가 궁궐 추녀마루 끝에 올라가서 손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게 했단다. 손도 어처구니들의 꾀가 무서워 예전처럼 함부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진 않는단다. 사람들은 이사할 때는 손 없는 날, 결혼식 날은 손 있는 날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손이 아직도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어처구니 없다는 말의 뜻은? 서민들 기와지붕 올리는데 익숙한 기와장이들이 궁궐 기와를 올리면서 함께 만들어 올려야하는 어처구니를 실수로 올리지 않은 것. 왕의 입장에서는 궁궐의 위엄과 건물 안전에 대한 커다란 실수이기에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그림도 읽을 만하고, 구수한 입말로 쓰여진 글도 맛깔스럽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강승남
‘어처구니’나 같은 뜻의 말인 ‘어이’의 어원이 ‘맷돌의 손잡이’의 방언이라는 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 없게 되는 데서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주로 인터넷에서(심지어는 유명 영화의 대사에서까지) 떠도는 이런 어원 풀이는 결론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가짜 정보다.
먼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어처구니’나 ‘어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어처구니: 「명사」(주로 ‘없다’의 앞에 쓰여))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어이02.
어이: 「명사」((주로 ‘없다’와 함께 쓰여))=어처구니. (국립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러니까 국어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어처구니’나 ‘어이’는 ‘맷돌의 손잡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인터넷에서 떠도는 대로 방언에는 그런 뜻이 있을까?
네이버의 방언사전을 찾아보면 그 어느 지방의 방언에도 ‘어처구니’나 ‘어이’가 ‘맷돌의 손잡이’로 풀이된 곳은 없다. 방언사전뿐 아니라 고어사전이나 각종 어원사전 등을 찾아보아도 ‘어처구니’나 ‘어이’가 ‘맷돌의 손잡이’라고 풀이된 곳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읽은 어떤 고소설, 고시조, 고문헌에도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나 ‘어이’라고 표현한 곳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 맷돌의 손잡이는 정작 무엇이라고 할까?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맷돌의 얼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맷돌은 돌로 아래짝 위짝을 같은 크기로 만들고, 아래짝에는 한가운데에 수쇠, 위짝에는 암쇠를 끼워 매를 돌릴 때 벗어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위짝에는 매를 돌리는 맷손을 박는 홈과 곡식을 넣는 구멍을 낸다.”
여기는 맷돌의 손잡이를 ‘맷손’이라고 하고 있다. 이 ‘맷손’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맷손’이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맷-손01[매쏜/맫쏜] 「명사」매통이나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처구니는 국어사전이나 방언사전, 고어사전, 고문헌 등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맷돌의 손잡이’와는 관련이 없는 말이다.
한편 ‘어처구니’나 ‘어이’의 어원을 ‘궁궐의 잡상’과는 연관지어 설명하는 어원 풀이도 널리 떠도는데 이 역시 어떤 문헌적 근거도 없는 가짜 정보다.
‘어처구니’나 ‘어이’는 국어사전의 풀이대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는 ‘어처구니없다’ 가 왜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를 뜻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근거 없는 가짜 정보로 어원을 풀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만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아야겠다. 공자님 말씀대로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 할 것이다.
ㅡㅡㅡㅡㅡ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궁궐의 잡상’이라는 이야기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는 말들도 있던데, 제가 읽은 ‘어우야담'(한국문화사 간, 시귀선,이월영 역)에는 ‘어처구니’가 ‘궁궐의 잡상’이라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혹시 다른 이본에 나온다면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어처구니에 대한 가짜 정보가 너무 널리 퍼져서 심지어는 아이들 학교 시험 문제에 출제될 정도여서 오염이 심각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ㅡㅡㅡㅡ
한 가지 더. ‘어처구니’의 어원을 ‘맷돌손잡이’나 ‘궁궐의 잡상’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이나 문화재청에서도 부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