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의 세상을 위하여

시리즈 블루픽션 30 | 양호문
연령 14세 이상 | 출판사 비룡소 | 출간일 2008년 12월 5일 | 정가 12,000원
수상/추천 블루픽션상 외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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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억수같이 긴 고통을 이겨내고 제 날개를 펴 세상으로 힘껏 도약질하려 할 때, 꽃봉오리가 입술을 죽 내밀며 복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그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시기에 이미 머리에 새빨간 줄이 그어진 네 불꽃같은 청춘이 있다.

사람들을 뱁새 같은 실눈으로 흘겨보며 말한다. 네 인생은 이미 끝났노라고. 꼴찌에 사고만 치는 공고생 놈들이 지금은 제 세상인 척 거들먹거리며 놀아도 잔혹한 세상, 그 곳에 발을 들여놓아 할 수 있는 건 고작 깡패나 오토바이 배달 뿐이라고. 아직 인생의 절반도 보내지 못한, 갓 잡은 붕어처럼 싱싱한 나이임에도,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려고 하는 아이에게 주제넘은 예언자들은 넌 결코 걸음마를 하지 못할 거라며 그들의 미래에 얇고 질긴 낚싯줄을 묶어 둔다. 자기가 사회에서 느낀 그 패배감과 열등감을 어디 한 번 모조리 느껴보고 자기와 같은 삶, 혹은 자기보다 못한 삶을 살라는 못난 이기심과 열등감이 얽히고설킨 음심 가득한 웅덩이로 서서히 끌어들이기 위해. 그 가짜 예언에 세뇌당한 싱싱한 꽃들은 시들고 시들어 제 안의 씨를 보지 못한 채 결국 예언대로 허망이 바람에 휩쓸리고 만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명찰 아래 아직은 아기 속살처럼 여리고 물렁물렁한 가슴을 가진 아이들, 미혼모 혹은 성범죄 피해자라는 오명 아래 제 나름의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사는 아이들, 대학이라는 가시덤불 덮인 지옥을 맨발로 걸어가라 종용받는 아이들. 꼴찌클럽의 악동 사인방도, 그 필요 불가분하게 소중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꼴찌’라는 단어 하나에 사람 넷이 질질 끌려가 끝이 없는 답답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담배는 없어서는 안 되는 달달한 밑반찬, 삥 뜯기는 종종 들리는 맛있는 분식집, 오락실이 아늑한 학교인 문제아들이 막노동, 즉 사회의 일부분을 통렬하게 경험하면서 사람 냄새 나는 구수한 정과 인간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았다. ‘구닥다리‘ 시골에서 탈출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던 재웅은 마을 주민과 어울려 흥겨이 트로트를 부르고, 생전 집안 사정을 들여다보지도 않던 기준은 한 뼘 쑤욱 자라 경제와 더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보게 된다. 푸릇하니 덜 익어 쓰디쓰던 내면이 그 동안의 부끄러움에 빨갛게 볼을 물들며 탐스럽게 익게 한 그 온도와 환경. 시골 사람들의 여름철 한껏 달아오른 백사장 고운 모래처럼 따뜻한 마음의 온도, 누구랄 것 없이 받아주는 두 팔을 벌려 관대히 품어주는 자연과 사람. 이젠 말하기도 지겨운 입시감옥에 갇혀 공부가 도구적 가치가 아닌 본래적 가치로 전도된 사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 소양을 풍부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람이 공부를 하기 위해 살아가는,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도 내 팔은 튼튼하다 으스대는 병든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 모두가 그 건강한 온도와 환경, 미래의 자양분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도 별 볼 일 있겠냐고, 콱 죽어 버리고 싶다는 재웅의 말을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아, 나도 그런 감정을 자주 느낀다며 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부모님에, 사회에 허수아비처럼 질질 끌려 다니다보니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한 야무지고 뚜렷한 목표가 없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특기 공부, 취미 공부인 학생이 태반이요, 장래희망을 적을 때 막연한 꿈이나 그냥 번뜩 떠오른 꿈을 적고, 목표가 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수행해나가야 할지 모른다. 인도자가 되어야 할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공부나 해라. 남들처럼 좋은 대학 가고, 그 다음에야 네 갈 길 정하는 게 순리라고. 그 때문에 우선 사인방과 같이 성적이 낮거나, 입시제도에 반감을 가진 학생들이 사회의 뒤안길에 밀려나 도태되고, 그 좋은 대학을 들어간 학생들도 넋 놓고 할 일이 없다. 청년실업이 들끓어 교수님에게 일자리를 구해 달라 항의하고, S대생도 청소부를 하는 이 세상에 학력만 좋다고 능력 없고, 비전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뽑는 관대한 회사가 있을까? 물론 아니다. 결국 대학 가서 정하라는 네 갈 길이 생각만 한다고 순식간에 턱 하니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호랑이굴에 교과서 하나만 달랑 들고 가 무서움을 맛본 사람은 어느 굴이든 손사래 치며 물러나는 법이다.

그러한 시스템 때문에, 느릿하고 유연한 소 같은 인성이 여우로 변하고, 넓게 보자면 각종 범죄, 사이코패스도 증가했으며 부모한테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속은 빈 강정인 애어른이 마치 공장에서 그들을 찍어내는 듯 늘어나고 있다. 우리에게도 ‘막노동판’이 필요하다. 실제로 취직하자고, 사회의 두려움을 맛보자는 뜻이 아니다. 사인방이 그 안에서 사회를 배우고 어른이 될 준비를 저도 모르게 해나갔듯 우리도 그러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 계기는 바로 수많은 경험이 아닐까? 조립반원들이 기초반원을 무시하는 것을 보며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이 왜 무시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무지하고 약한 자들을 슬쩍 조종하려는 행태에 맞서 싸워보고, 마을에 영농 법인을 만들고 장례를 도우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정도 느껴보고. 한숨 돌리게 해 주는 여가 시간과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질도 풍부한 프로그램. 혹은 소중한 간접 경험을 시켜주는 책, 특히 이 책과 같은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그리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그 훌륭한 경험 끝에 윤기 나는 진주알이 또르르 굴러 나올 것이다.

사인방을 따라 선로를 질주하는 동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선, 그 잔혹하고 절대적인 시선 혹은 선입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꼴찌, 미혼모 등에게 족쇄를 채워놓는 것이 바로 시선이요, 조립반원들의 비뚤어진 시각과 행동도 시선이다. 첫 장을 넘기며 재웅이의 손에 이끌려 갈 때, 그 손에서 담배 냄새를 느끼고 불쾌감을 느꼈던 것도 시선이요, 재웅이가 양 대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욕설을 내뿜으며 아니꼽게 본 것도 역시 시선이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시선으로 평가하고 자로 재면, 그 사람 역시 평가당하고 또 그도 평가 당한다. 끝이 없는 모순의 족쇄이다.

몇 주 전,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고 인상 깊었던 활동이 있었다. 사람은 눈에, 그리고 보이는 것에 모든 걸 의존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정작 그 사람의 투명한 알맹이는 보지 못한다. 때문에 외면과 외면이 아닌 인간과 인간이 마주보자는 의미에서 한 사람이 눈을 감으면 누군지 모를 다른 한 사람이 그를 인도해주는 활동이었다. 옷매무새, 목소리, 말투 등 잡다한 외면에 신경 써 정작 중요한 건 보지 못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고 손을 내미는 것. 그럼으로써 은향이는 전교 일등이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꼴찌클럽은 성적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유쾌한 여행을 마치고 재웅이의 손을 놓은 순간, 아쉬움이 아닌 다소 씁쓸했던 이유는 무엇에서였을까. 실제로 사인방이 내 눈 앞에 등장하게 된다면, 그들이 시골에 동화되어 후에는 탈출 계획을 버릴 정도로 순수하지 않으며, 양 대리와 천마건설 사장이 도시 사람답지 않은 후한 인심을 보여주지는 않았으리라. 그러한 속된 생각 때문이었을 테다. 이렇게 좋은 책을 접하고도 현실과 비교하며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지금이 싫다. 재웅, 호철, 기준, 성민. 꼴찌 아닌 꼴찌인 유쾌한 사인방. 너희도 그렇지? 우리가, 아직 때 묻지 않은 우리 손으로 바꾸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