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달 행사로 학교에서는 과학상상 그리기대회, 글짓기 대회가 열린다. 해마다 실시하는 대회는 아이들의 결과물이 너무나도 비슷하여 마치 모범답안을 보고 학습하는 것처럼 씁쓸할 때가 있다.
그림은 해저도시와 우주도시가 주를 이루는데, 내용이 워낙 비슷하다 보니 기교가 뛰어난 아이들을 뽑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교가 뛰어나다 함은 학원에서 얼마나 훈련을 잘 받았나와도 통하는 부분이라 수상자를 가리면서 약간 찝찝한 맘이 들기도 한다.
글짓기는 ‘미래에는 어떠어떠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미래의 생활을 그려보는 형과 자신을 미래에 속하게 하여 글을 써 보는 경우가 있는데 가령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식사 로봇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해저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하고… 그리고 식사는 각종 영양소를 녹여 둔 알약으로 대체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내용도 참 유사하다.
이렇게 정석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아이들에게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이야기를 먼저 들려 주었더라면 아이들의 글의 방향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었다.
사실, 이 책 표지만 보고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에 대한 평이 너무 좋아 골랐던 책이다. 읽어보고 정말 잘 골랐다는 생각을 했다.
조너스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무언가 다르다.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이 억제되고, 고통도 성욕도 심지어는 날씨도 모두 통제 된다.편안한 삶을 위해 맞추어진 그 모든 것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곳. 자기 직업 또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직위가 주어지는 곳. 심지어는 자식도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당 두 명씩 배당 받아 키우는 곳이다. 세 번의 큰 과오를 범하면 임무해제 되는데…
12살이 되면 마을의 모든 아이는 12살 기념식을 통해 직위를 받게 되는데 주인공인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 직위를 받게 된다. 표지의 할아버지는 이전의 기억보유자로서 조너스에게 기억을 전달해 주면서 기억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보육사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조너스의 아버지는 이름도 받기 전의 아이인 가브리엘(이름을 미리 들어 알아냈다.)이 밤잠을 잘 못 자고 적응을 하지 못하자 임무해제 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그래서 가브리엘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적응 시켜 보고자 허락을 받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조너스와 같은 눈빛을 가진 가브리엘은 나름 적응 하는 것 같아 다시 데리고 가면 여전히 상태가 그러하여 임무해제 될 위험에 놓인다. 기억보유자에게 허락 된 권한으로 조너스는 아버지가 쌍둥이 중 몸무게가 더 낮은 아기를 임무해제하는 광경을 녹화 해 둔 화면을 보고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된다. 위험에 처한 가브리엘을 구하고자 마을을 탈출하여야겠다는맘을 먹게 되는데… 기억 전달자로부터 받은 무수한 기억들, 고통, 사랑, 평화, 슬픔, 외로움… 그 기억들을 안고 마을을 떠나게 되면 그 기억들이 조너스로부터 탈출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해 보고는 치밀한 계획 하에 마을을 떠나려 했으나 위험에 처한 가브리엘을 위해 무작정 길을 나설 수 밖에 없는 조너스.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의 앞길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죽음과도 맞설 각오를 하고 떠나면서 희미해진 기억 뒤로 새로운 용기를 얻어 나아가는 조너스의 발걸음은 ‘늘같음 상태’의 평화로움(?)을 뒤로 하였으나 새 희망을 열어가는 힘찬 발걸음이다.
반전으로 가슴을 콩닥이게 한 책.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 변화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을까 생각하면서 역동적인 하루하루에 감사하게 하는 책이었다.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니 무척 읽고 싶어한다. 얼른 학급문고로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