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두 글자를 듣고 지루함에 몸서리치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철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배적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철학 책들은 대부분 저마다 쉬운 책이라며 홍보의 손길을 내밀지만,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대중들은 다가오지 못하게 자신들만의 지식으로 쫙쫙 채워진 경우가 태반이다.
몇 주 전, 도덕과에서 철학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하는 과제물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철학책이라는 말에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몇 가지 목록을 뽑아주셨지만, 그럼에도 대다수가 버거워했다. 한 학년이 전부 철학책을 읽는 의미 있는 경험을 했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 얻어간 학생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씁쓸했다.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전문 도서가 아니라면, 책 본연의 임무는 당연히 ‘많은 이들과의 소통’ 이다. 그럼에도 세상과의 벽을 단단히 친 책들은 단순히 졸작일 뿐이요, 제 지식 자랑하기가 아닐까. 어려운 책들만이 자신의 학식을 드높여준다 생각하는 풍조 속, 그 어떤 사람이라도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씌어진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은 제목 그대로 가장 쉬운, 가뭄 속의 콩이다.
사르르트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시험 기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외웠던 그 한 문장을 이 책에서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릴 적 친해지고 싶었지만 많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몇 년 뒤에 운명적으로 만나는 찬란한 기분. 그림이라는 맛좋은 소스와 곁들여진 다정한 설명 덕에 그 짧지만 많은 것을 함축한 문장을 진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짧은 몇 문장에 인생의 궁극적인 엑기스를 담아 놓은 것. 난해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너무나 어려울 수도, 또는 얼핏 지나가는 쉽고 가벼운 생각일 수도 있는 것.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반짝이는 심연의 지혜, 철학. 옷깃만 스친 이 짧고 인상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삼아 앞으로 그를 더 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