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난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밝히기는 좀 창피하지만 누워서 책 보다 졸기가 어느덧 내 취미생활이 돼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단한번도 졸지 않고 밤을 꼴딱 새워도 좋을만큼 재밌고 뒷맛까지 개운한
거기에 생각거리까지 잔뜩 던져주는 아주 고마운 책을 만났다.
바로 빅마우스 앤드 어글리걸이다.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훈남에 유머감각까지 두루 갖춰 인기 있는 부반장 맷이 한번의 말장난 때문에
학교 폭파 테러리스트로 지목받아 경찰서에까지 잡혀가고
친한, 아니 친하다 믿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까지 모두 그를 외면한 순간,
맷과 잘 알지도 못하는 얼꽝 떡대 여자농구부 주장 어슐러의 증언으로
맷은 누명을 벗게 되고
이후 둘 사이에는 끈끈한 우정 이상의 감정이 새록새록 피어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내용은 간단해보이지만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결코 간단치 않다.
맷이 가장 친한 친구들한테 외면당하고 왕따에 괴롭힘까지 당하고
맷의 부모님까지 고통받는 장면은
한번의 말장난 탓에 받게 되는 벌 치고는 무시무시하리만큼 가혹했다.
맷에게는 그런 말장난은 꿈에서라도 하면 안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온갖 추악한 행동과 눈빛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정작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내 맷과 그의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장면은
책에서도 표현됐듯 집단 히스테리로밖에는 보여지지 않았다.
무언가 끊임없이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고
말로써 사람들을 말려죽이는걸 즐기는 잔인한 사람들이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존재하기에 맷이 경험한 모든 일들이
더 가슴 아팠고, 나서서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맷은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닌걸 안다면서도
선뜻 작은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못하는 친구들과
자기 자식 장래에 행여나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맷과의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부모들의 심정이
나도 같은 부모로서 백분 이해가면서도
조금의 손해도 보기 싫단 이유만으로 저렇게 남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해버리면
내가 정작 위험에 빠졌을때, 혹은 내 자식이 그런 위험에 빠졌을때
뻔뻔스럽게 남에게 도와달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해보고 반성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 이런 무거운 이야기만 가득한건 절대 아니다.
성격적으로나 외모로 볼때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맷 도너기와 어슐러 릭스가 보여주는 끈끈한 우정은
현실에서도 꼭 있었음 싶을 정도로 흐뭇함을 자아낸다.
맷은 180, 어슐러 179~ 키로만 따진다면 둘은 얼핏 어울리는 듯도 싶다,
하지만 맷은 비록 여드름투성이에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지만
생생한 미소가 매력적인 (경주용 개처럼) 깡마른 훈남인데 반해
촌스런 옷차림, 어울리지 않는 메츠 모자, 인조 말가죽 부츠 차림,
얼꽝에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가슴만은 절벽인 어슐러 릭스는
어슐러의 말을 그대로 빌려와도 못생긴 소녀 그 자체일만큼
둘은 외모만 따져봐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격은 또 어떤가?
맷은 사교적이다 못해 사람들을 웃기지 못해 안달인 성격,
즉 사람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받고 싶어하는 성격인데 반해
어슐러는 남이 자기를 좋아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않고 남의 이목 따위는 관심도 없는 듯
자기 소신껏 하고픈 말은 다 하고
옳다 싶은 일은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는 매사 당당함이 흘러넘치는 아이다.
하지만 이도 웃긴 것이 실은 맷은 진지한 성격이지만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튀는 행동을 했던 것이고
어슐러는 실은 남의 이목을 아주 중요시하지만
어슐러와 못생긴 소녀를 철저히 분리해놓고 못생긴 소녀의 가면을 쓰고 다닌다는 점이다.
칠흑의 검정, 불꽃의 빨강이라는 감정을 오가는 어슐러가
맷을 만나고부터 불꽃의 빨강(한마디로 좋은 감정)일 때가 많고
못생긴 소녀가 아닌 어슐러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변화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흐뭇했다.
친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외면했을때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맷을 백마 탄 공주님처럼 구원해준 어슐러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책소개에도 나왔듯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맷과 외모적인 문제가 있는 어슐러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며 끝까지 같이 해주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었다.
깡마른 맷과 뚱뚱한 어슐러를 합쳐 반으로 나누면 온전한 두사람이 된단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외모를 설정한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농구할때 피어올랐던 불꽃의 빨강(어슐러의 좋은 감정)이
빨간 머리를 가진 맷을 만나 자주 모습을 보인다는 설정도 정말 기발해보였다.
감동과 재미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보기 드문 작품이란
미국 도서관 협희의 평이 더도 덜도 아니고 정말 딱이다 싶을 정도로
재미나고 감동적인 소설이었다.
지금 당장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더 읽는다해도 똑같은 감동과 재미를 줄지
궁금할 정도로 한번 더 읽고 싶고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이 흘러넘치는 정말 멋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