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요즘 한창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동성폭력’ 문제를 접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게 되어 그런지 마음이 많이 무겁다.
이 무거운 주제를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그려낸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겹핍을 안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은 첨예한 각을 새우기 보다 작품 속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라보다 앞선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선생님의 시선처리 및 사라가 느끼는 심리적 갈등은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 속에 빠르게 빨려들게 만든다.
또한 작가가 구사한 구성 형식 또한 이 작품을 빛나게 만든다.
구체적 결과를 제시하기 보다 모두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며 끝맺음을 하는 작가의 마무리도 이 작품이 오래도록 회자되게 하는 요인으로 생각된다.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등장인물의 심리를 얼어버린 운하에 비유한 점은 이 작품의 작품성을 매우 높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과 비교할 만한 국내 작가의 작품을 얼마전 읽은 터라 더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듯 하다.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도 등장인물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같은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모가 보여주는 태도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어른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던 작품이다.
『운하의 소녀』가 『유진과 유진』이란 작품과 비교가 되는 부분은 두 작품 속 피해여성이 보여주는 심리와 태도에 있다.
과거를 지우려 하지만 지워지지 않고 성장해 버린 선생님과 이제 막 상처를 입은 사라.
그리고 사라의 부모님이 보여주는 태도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뇌이기 싫어 회피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유진과 유진』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보니 『운하의 소녀』는 읽고 나서도 무거운 마음을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작품은 구성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운하의 소녀』가 선생님의 일기와 사라의 심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면, 『유진과 유진』은 큰 유진의 시선과 심리 작은 유진의 시선과 심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선처리는 매우 섬세하다.
특히 『운하의 소녀』에서 마지막 선생님이 사라에게 손을 내밀던 순간의 묘사는 이 작품의 백미였다.
이는 좀 더 짧은 분량의 작품인 『운하의 소녀』가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섬세하고 세심하게 어루만져 달래주고 품어주는 모습…그리고 마음을 치유하는 말.
“넌 어떤 순간에도 그 사람에게 몸을 준게 아니야. 그 사람이 네 몸을 훔친거야. 그 사람이 널 훔쳤다고.”
이는 우리 사회가 피해 아동에게 보여주는 태도에 대한 작가의 외침이라 생각한다.
잘못한 사람은 분명 있지만 그 고통을 안고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작가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시선과 더불어 ‘네게는 잘못이 없어.’라고 강하게 마음에 새겨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작가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사라의 부모님 또한 사건을 알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말 또한 가장 강한 치유약이 ‘사랑’임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운하의 소녀』도 그렇고 『유진과 유진』도 그렇고 모두 ‘사랑해’라는 말이 가장 확실한 치유약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아동성폭력’에 관한 문제는 전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에 따라 사전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사건 발생 후 피해다동을 보살피고 마음의 상처,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것에 그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문학작품들은 사전 예방적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피해아동에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모두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마지막 여운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의 마지막 귀절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내일, 운하의 물은 다시 흐를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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